지난봄, 한국여행을 앞두고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한 것은 혼자 남겨질 아들의 끼니도, 웰빙견 돌돌이의 산책도 아니었다. 바로 깻잎과 고추 모종이었다. 이곳에서 깻잎과 청양고추는 금값이다.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걸 싫어하지만 이것은 나에게 예외였다. 그래서 모종을 키우는 두 명의 지인에게 깻잎과 고추 모종을 우리가 한국에서 돌아올 때까지 세이브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돌아온 후, 그 모종들을 심고 키워 여름 내내 신선한 깻잎과 고추를 따먹고 싶은 소박하면서도 거창한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부탁을 받은 두 명의 지인들은 너무나 고맙게도 고추와 깻잎 모종을 우리를 위해 남겨 주셨다.
이곳 여름은 매우 짧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날씨가 따뜻해지면 미친 듯이 꽃을 사다가 집 앞에 심는다. 미친 듯이 꽃을 사다 심는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말 그대로다. 어쩌면 경쟁적으로란 표현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짧아서 더 소중한 여름날, 예쁜 꽃을 사다가 집 앞을 꾸미는데 돈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City of Edmonton에서는 집 앞의 정원을 잘 꾸며놓은 집들을 선정해서 Nominee 팻말을 꽂아주고 우승자 (2022 Front Yards in Bloom Winners - City of Edmonton)를 뽑는다.
하지만 우린 다르다.
나는 집 앞 화분에 깻잎과 고추를 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며,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는 정성을 다한다. Miracle Gro, 쌀뜨물, 또 콩불린 물 (우리 집은 매끼 콩밥이다)을 주며, 나의 애정과 관심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그 정성에 깻잎과 고추는 풍성함으로 나에게 보답하며 우리 가족의 식탁에 오른다.
오늘 저녁은 직장인들이 가장 신나는 불금이다. 집 앞 화분에 손바닥만큼 자란 깻잎들을 아낌없이 뜯어, 목살맛있게 구워 쌈사서 먹어야겠다. 벌써부터 신이난다.
너무 키 크게 자라 버린 꺳잎 모종이 바람에 상할까 봐 땅속 깊이 심었더니 이렇게 잘 자라주었다.
귀한 두 개의 고추모종, 지지대를 세워 주었다. 유난히 바람과 비가 많았던 날씨에 지금까지 고작 고추 한 개를 따 먹은 게 다지만, 앞으로 많은 고추가 열리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