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게 주방 냉장고의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냉장고 주변에서는 약간의 고소한 타는 냄새가 났고, 전원은 켜져 있는 상태지만 냉장고 안은 냉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히 냉장고의 상태를 금방 발견하여 안의 식재료들은 아직 차가운 상태였다. 하마터면 식재료들을 다 폐기 처분할 뻔했다.
고장 난 냉장고 안의 식재료를 이미 가득 차 있어 더 이상 공간이라고는 거의 없는 다른 냉장고에 꾸겻꾸겻 넣고, 가만히 현재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사실 나는 냉장고에 대해 전혀 모른다. 심지어 가동되는 원리 조차도. 하지만 AS를 부르기 전에 그래도 현재의 상태를 싶은 마음에 하나하나 추리를 해가며 냉장고의 상태를 나름 분석해 보았다.
먼저 타는 냄새. 타는 냄새가 난다는 게 무슨 의미 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왜일까. 왜 타는 냄새가 날까. 그때 어렴풋하게 아주 예전 기억 속에 비슷한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때는 13살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당시의 우리 또래에게 미니카 열풍이 강하게 불었다. 아마 ‘달려라 부메랑’이라는 만화 때문이었던 거 같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한없이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 헤어 나오기 힘들기에 중략하고, 그 당시에 비슷한 타는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났다. 이유는 모르지만 미니카의 핵심부품인 블랙 모터가 탔을 때 나던 냄새.
거의 25년이나 된 추억 속의 냄새를 끄집어낸 스스로에게 칭찬을 했다.
‘그렇다면 냉장고 모터에 문제가 발생했구나. 전원은 들어가지만 모터가 돌지 않아서 타는 냄새가 나는 거였구나.’
스스로 고장의 원인을 찾아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한편, 원인을 알아냈다 한들 스스로 고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요즘 장사도 안되는데 냉장고까지 말썽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전 다른 냉장고를 수리했던 기억에 스마트폰을 열고 당시 수리를 해주었던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증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사장님은 ‘아마 모터~~어쩌구저쩌구~~ ‘ 말을 하셨다.
그리고는 늦게라도 와주시겠다고 했다.
몇 시간 후 냉장고 AS 사장님이 한 손에는 연장통을 들고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매장으로 들어왔다.
짧은 인사를 나눈 후 고장 난 냉장고의 옆면을 뜯은 사장님은 “모터가 나갔네”라는 말을 하고 바로 수리를 했다. 차에서 새 모터를 가지고 온 시간까지 합쳐서 15분이나 지났을까.
“이제 다 됐습니다.”
전원을 켜고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장님은 냉장고 문을 열며,
“자 보세요 여기 냉이 쫙 올라오는 거 보이시죠? 잘 작동됩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어딘가 알 수 없는 장인의 품격이 살짝 느껴졌다.
장비를 연장통에 넣은 사장님은
“수리비는 6만원이에요” 라고 말했다.
몇 년 전 같은 냉장고를 수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25만 원인가 들었던 기억이 있어 살짝 걱정을 하고 있던 나는 사장님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니 사장님은 지난번에도 그렇고 수리비가 저렴하고 딱 문제 있는 부분만 고쳐주시네요”
에어컨, 자동차, 컴퓨터 등 AS에 바가지요금이 많이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나는 웃으며 물었다.
“저는 10년 전 정한 가격에서 100원도 올리지 않고 그대로 하고 있어요. 수리비는 지난번에 그 계좌로 보내주시면 돼요”
사장님은 당당함과 장인정신이 듬뿍 묻어나는 듯한 아우라를 풍기며 짧은 말을 남기고 문을 나섰다.
시원하게 잘 작동하는 냉장고를 보며 문득 어떤 깨우침을 느꼈다.
예전에 TV에서 착한식당 이런 비슷한 주제로 나온 가게의 주인할머니께서
“배부르게 먹으면 되지 가격을 왜 올려!”라고 말하던 모습과
조금 전의 냉장고 AS사장님의 비슷한 듯한 뉘앙스의 말.
어쩌면 저게 오래가는 비결이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했다.
2~3년에 한 번씩 인건비며 원재료값이며 여러 핑계로 가격을 조금씩 올리던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살짝 들었다.
나에게 남는 마진을 높이기보다는 고객의 만족을 높이는 것이 훨훨씬 더 중요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