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부. 010 번호이동 빅뱅
IMT-2000 시대의 도래가 통신기술의 지형을 바꿨다면, 식별번호 체계의 개편은 그 지형 위에 펼쳐질 질서를 바꾸는 작업이었다. 2002년 하반기, 식별번호와 번호이동성 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11월 11일, KT와 LG텔레콤은 정보통신부에 ‘번호공동사용제도’ 도입을 공식 건의했다.1) 사업자와 관계없이 식별번호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단지 사업자를 바꿔도 번호를 유지하자는 것을 넘어서, 식별번호 자체를 공공재처럼 다루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건의문이 제출된 지 이틀 뒤, 시장은 또 한 번 뒤집혔다. 11월 13일, 기자간담회에 나선 이상철 정보통신부 장관은 “국번호 첫자리 ‘2, 3, 7’을 아예 없애고, 번호 체계를 5자리로 바꾸겠다”고 발언했다.2) 2002년 초 확정한 010 번호체계를 사실상 백지화하는 수준의 전환이었다. 이 장관의 발언은 정책 예고 수준을 넘어 기정사실처럼 전달됐고, 시장은 경악했다.
정보통신부는 이후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다. 번호공동사용과 번호이동성 제도를 IMT-2000 상용화 일정에 맞춰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신사 간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갈라졌다.
SK텔레콤은 즉각 반발했다. 자사의 011 식별번호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수년에 걸친 마케팅과 광고, 요금제 설계, 고객 충성도 구축 등 기업 정체성과 다름없는 상징이었다. SK텔레콤은 “필요하다면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반면, KTF와 LG텔레콤은 원칙적으로 환영했으나, 번호이동성의 경우 일정한 ‘시차 적용’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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