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1G 이동통신, 휴대전화 개발

5부. 1세대 이동통신

by 김문기

1980년대 초 ‘무선전화’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휴대전화’와는 달랐다. 무선전화는 주로 유선 전화기의 연장선에 있었고, 거실에 두고 쓸 수 있는 코드리스폰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당시에는 휴대용 무전기 형태의 단말도 종종 ‘무선전화’로 불렸고, 이 때문에 ‘무선전화’와 ‘이동전화’는 혼용되어 사용됐다.


비슷한 시기, 이동전화에 가까운 기기들도 시장에 등장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니 워크맨에 빗대어 ‘워크폰’이라 불렸던 장비는 지금의 휴대폰이라기보다 군용 무전기를 닮은 장비였다.1) 이 시기 정보통신 시장은 유선전화, 무선전화, 카폰, 무선호출기(삐삐), 워크폰 등이 각축을 벌이며 복잡한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이동통신 서비스는 당시 국영독점체제였기 때문에 시장 경쟁은 자연스럽게 단말 제조사 중심으로 전개됐다. 금성통신(현 LG전자),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 동양정밀, 현대전자, 대우통신, 맥슨전자, 태흥정밀 등이 시장을 주도했고, 이 가운데 금성통신이 전화기 시장의 강자였다. 삼성과 동양정밀이 뒤를 이었고, 카폰과 무선전화 시장을 둘러싼 기술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경쟁 판도를 바꿀 신사업은 언제 어디서나 통화할 수 있는 ‘이동전화’ 개발이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은 기술력 과시의 기회였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국내 기술력을 세계에 알릴 절호의 무대였기에 개발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다운로드 (3).jpeg 88 서울올림픽 통신 지원 감사패(좌)와 1984년 한국이동통신서비스주식회사 현판식 [사진=SKT 뉴스룸]

1988년 4월 30일, 공중전기통신사업자로 지정된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독립 운영 체제를 확립하고, 마침내 같은 해 5월 13일 ‘한국이동통신’으로 사명을 변경했다.2)3) 중장기적으로는 카폰, 삐삐 등을 넘어서 휴대전화라는 새로운 통신 패러다임을 주도하기 위한 조직 정비였다.


당시 ‘이동통신’은 단순히 서비스 추가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개척이었다. 그러나 걸림돌은 많았다. 당시 휴대용 무전기 수준의 장비는 전파 도달 거리가 10~30Km에 불과했다. 고속도로 중계소 간 간격은 20~60Km 였다. 무선 중계망이 부족했고, 기지국 간 연결도 유선 기반이어서 망 확장이 어려웠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기회가 서울올림픽이었다. 1988년 전후로 유선 인프라가 고도화되고, 전전자 교환기(TDX-1B)의 국산화가 완료되면서 네트워크 기반이 한층 정비됐다. TDX-1B는 1989년 한 해에만 37만 회선이 설치됐고, 셀룰러 방식 기반의 무선 중계망도 점차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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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문지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하며 전세계를 누볐습니다. 이전에 정리했던 이동통신 연대기를 재수정 중입니다. 가끔 다른 내용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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