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통신독점, 경쟁을 심다
1980년대 말, 정부는 독점적으로 운영되던 통신시장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정보통신기술이 빠르게 진화하고, 국제사회의 통신시장 개방 압력이 거세지면서 국내 통신정책도 더 이상 기존 틀에 머물 수 없었다.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한 경쟁 도입, 그것이 정부가 내세운 개혁의 방향이었다.
1990년 4월 21일, 제주 성산읍. ‘제주-육지 해저 광케이블’ 준공식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정부는 그간 독점체제를 유지해 오던 각종 통신망 사업에 경쟁원리를 도입하고 민영화와 개방화 등 다각적인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보산업과 첨단산업의 육성과 기술개발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며 통신시장 개방을 공식 선언했다. 정부가 기술 개발과 민간 경쟁을 동시에 지원하겠다고 천명한 이 발언은 이후 국내 통신산업 지형을 바꾸는 출발점이 됐다.1)
2주 뒤인 5월 10일, 체신부는 공중전기통신사업자를 ‘기간통신사업자’와 ‘부가통신사업자’로 이원화했다.2) 기간통신사업자는 유선망, 즉 회선 설비를 보유한 인프라 사업자이고, 부가통신사업자는 이 회선을 임대해 응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다. 이 체계는 오늘날 통신산업의 법적 근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어 7월 12일, 체신부는 ‘통신사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3) 구체적으로 ▲시장경제원리 도입을 통한 통신사업 경쟁력 강화 ▲통신수요의 다양화와 고도화에 따른 신규 서비스 창출과 확대 ▲직접적인 규제와 지도를 벗어나 자율을 바탕으로 한 간접적 조정 정책으로의 전환 ▲민간경영기법에 의한 시장 활성화와 창의적인 육성 도입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 결과적으로 통신사업의 발전을 가속화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KT(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와 한국데이터통신 간 경쟁 구도가 가장 먼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정부는 1988년 두 기관에 업무영역 조정지침을 내려, KT에 데이터 사업 진출을 허용하고, 한국데이터통신엔 전화 서비스 참여 길을 열어줬다.
음성전화 서비스의 경우 국제와 시외, 시내 전화로 구분해 2~3개 사업자가 경쟁할 수 있도록 했다. 비음성 서비스(데이터 전송)는 한국데이터통신이 기반을 쌓을 수 있도록 광케이블 전용회선망 구축을 독려했다.
잠시 한국데이터통신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1990년 3월 29일 창립 8주년을 맞아 2~3년 내 독자적인 사업영역을 확립하는 한편 비음성 자료 전송 서비스에 전념하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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