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00년 통신독점 해체,
001 vs 002

6부. 통신독점, 경쟁을 심다

by 김문기

1991년 12월 3일. 대한민국 정보통신 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날, ‘데이콤(DACOM)’이 마침내 국제전화 서비스를 개통했다. 식별번호는 ‘002’.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는 의미를 넘어, 무려 100년 동안 유지돼 온 국영 통신 독점 체제가 처음으로 깨진 역사적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이 전화기를 처음 들여온 건 1880년대. 1902년 서울과 인천을 잇는 시외전화가 개통됐고, 이후 모든 통신망은 국가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체제로 발전했다. 그간 민간 사업자가 통신 인프라에 참여한다는 건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국제전화마저 당연히 한국전기통신공사(이후 한국통신)의 고유 영역이었다. 하지만 1991년 12월, 이 흐름이 뒤집힌 것이다.


데이콤이 국제전화 서비스를 개통하기 전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한국데이터통신은 국제전화 진출을 공식화하면서 과감한 선택을 한다. 국문 명칭인 ‘한국데이터통신’을 뒤로 하고, 기존 약칭이었던 ‘데이콤(DACOM)’을 정식 사명으로 채택한 것이다.1) 대중성과 국제화를 동시에 꾀한 전략이었다. 혼용됐던 명칭을 통일해 ‘002’ 서비스와 함께 브랜드 인식을 강화하고자 했다.

다운로드 (9).jpeg 국제전화 002 홍보 사진 [사진=HS에드]

이 흐름은 한국통신에도 반영됐다. 1990년 12월,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사명을 ’한국통신(Korea Telecom)’으로 변경하고 기업문화헌장을 선포한다.2) 통신 민영화와 경쟁 체제의 도래를 예고하듯, 두 기업 모두 외형뿐 아니라 내부 체질까지 변화를 꾀한 것이다. 약 100년간의 국영 독점 구조가 무너지기 직전, 그 전조는 명패를 바꾸는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002’ 서비스의 전략은 명확했다. 요금제 개편과 고객 인식 전환. 기존 한국통신 ‘001’은 분 단위 과금이었으나 데이콤은 초 단위 과금을 도입했다. “쓴 만큼만 내세요.” 이 말 한마디가 전 국민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천 원이면 미국과 통화할 수 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해외와 연결된다.”라는 카피는 단순한 요금 차별이 아닌, 생활의 일부로 다가간 홍보 전략이었다.3)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문기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IT 전문지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하며 전세계를 누볐습니다. 이전에 정리했던 이동통신 연대기를 재수정 중입니다. 가끔 다른 내용도 전합니다.

145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0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18. 독점에서 경쟁으로, 한국통신 vs 한국데이터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