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제2이동통신사 선정
1992년,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통신시장 구조 개편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산업정책과 대기업의 반발에 이어 이번에는 정부 부처 간 갈등이라는 예기치 못한 충돌이 발생했다. 체신부의 경쟁체제 도입 계획에 상공부와 경제기획원이 반기를 들며, 정책 추진은 3개월간 표류했다.
갈등의 표면적 원인은 ‘무역수지’였다.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통신장비 국산화율이 10%에 불과한 상황에서 제2이동통신사를 출범시키면 대규모 수입 수요가 발생해 무역적자를 유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1994년 상용화를 목표로 할 경우 통신 시스템 장비 및 단말기 대부분을 해외에서 조달해야 하며, 이는 상공부의 핵심 정책 목표인 수지 개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입장이었다. 상공부는 사업 시행을 1년 유예해 국산화율을 1995년까지 40~50%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현실론을 폈다.1)
여기에 경제기획원도 가세하며 논쟁은 더욱 확산됐다. 상공부는 휴대폰 국산화율 15%, 카폰 35%, 무선호출기 30% 수준의 현실을 근거로, 도시바·후지쯔·NEC 등 외산 부품 의존도가 높고, 대부분 OEM 방식으로 수입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이자, TDMA와 CDMA 기술방식 간 표준화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한 도입은 산업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논리도 제기했다.2)
체신부는 맞섰다. 1993년 말 이동전화 가입자가 2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며, 기존 800MHz 대역폭 30MHz 내에서는 주파수 포화가 불가피하다는 진단을 내렸다.3) 제2이동통신사를 도입하지 않을 경우 주파수는 한국이동통신에 몰릴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경쟁체제 도입 무산과 독점 심화라는 이중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체신부는 상공부가 추정한 무역적자 규모(15억달러)가 과장되었으며, 실질적으로는 약 6억달러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반박을 내놨다. 또한 모토로라가 요구한 기술이전 조건(30%) 수준에서는 단기간 내 국산화율 상승도 어려울 것이라고 반박했다.
현장에서의 긴장도 고조됐다. 이미 주요 기업들은 컨소시엄 구성과 시험장비 구입, 기술 자문 등에 수백만 달러를 투입한 상태였다. 특히 선경, 포항제철, 금성, 삼성 등 유력 기업들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인력을 배치하고 사업 준비에 착수한 상황이었다. 사업자 선정이 연기되면 비용 회수 불능은 물론, 기술 개발과 시장 대응력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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