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부. CDMA 출항, 2G 다사다난 항해
1989년,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 개발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아날로그 방식으로 운영되던 1세대 이동통신은 주파수 자원 고갈로 인한 적체 문제가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됐다. 체신부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 정보통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시분할다중접속(TDMA) 방식의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을 자체 개발하기로 했다. 예산 441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1991년 5월 17일. 체신부 차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전파육성협의회는 기존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연구개발 주체인 전자통신연구소(현 ETRI)가 미국 퀄컴(Qualcomm)으로부터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을 도입해 1993년 10월까지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복안이 발표됐다. 기술도입료만 1천698만달러, 당시 약 120억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업계는 술렁였다. 이미 1년 이상 TDMA 방식 연구가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체신부의 급작스러운 노선 변경은 혼란을 야기했다. 연구자의 잦은 교체와 연구성과의 사장(死藏) 우려가 제기됐다.1)
체신부는 명분을 내세웠다. 기존 아날로그 시스템은 1993년이면 주파수 자원 고갈로 교통 정체가 불가피한 상황. 자체 기술개발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외국 기술을 들여와 적체 위기를 사전에 해소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거셌다. CDMA는 실험실 수준의 기술로 상용화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었다. TDMA와 달리 상용망 도입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와 정책 변경이 수반되는 CDMA 도입은 지나친 도박이라는 평가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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