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부. CDMA 출항, 2G 다사다난 항해
1992년 12월 3일, 체신부는 국내 이동통신 기술의 단일 표준으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을 채택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상용화가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일방적으로 선택한 데 따른 반발은 업계뿐만 아니라 정부 내부에서도 거세게 일었다.
체신부는 1989년부터 시분할다중접속(TDMA) 기반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을 자체 개발하고 있었으나, 1991년 5월 돌연 방향을 틀었다. 전파육성협의회를 통해 미국 퀄컴의 CDMA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첨단 기술이지만 실용화된 사례가 없는 CDMA 선택에 대해 당시 상공자원부는 TDMA의 상용화 가능성과 수출 경쟁력을 내세우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양 부처의 갈등은 단지 기술적 입장 차이를 넘어 정치적 갈등으로까지 비화됐다. 상공자원부는 국산 장비 개발을 우선시하며 1992년 제2이동통신사 선정 연기를 주장했고, 체신부는 기술 도입을 통한 조기 상용화가 필요하다며 반대했다. 이 과정에서 일정이 미뤄져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며 제2이통사 선정은 무산됐다. 업계에서는 이 역시 상공자원부의 책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체신부는 CDMA 기술 도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퀄컴과의 협력에 박차를 가했다. 1991년 8월, 체신부 산하 전자통신연구소(ETRI)는 퀄컴과 기술협약을 체결하고 CDMA 기지국, 단말기, 교환기 개발에 착수했다. 초기 단계였던 CDMA 기술을 기반으로 한국형 통신망을 설계하는 도전적인 시도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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