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동통신기술개발사업관리단 등판

12부. CDMA 출항, 2G 다사다난 항해

by 김문기

체신부가 1992년 12월 CDMA를 디지털 이동통신 단일 표준으로 확정하면서, 업계의 반발이 이어졌다. 특히 1997년으로 예정됐던 상용화 시기를 1995년으로 앞당기면서 현실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본격화됐다. 당시 체신부는 ETRI와 함께 1993년 9월 시제품 제작, 1994년 9월 1차 상용제품 개발, 그리고 1995년 말 상용화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3단계 로드맵을 수립했다.


하지만 실무를 담당해야 하는 국내 통신 장비업체들은 CDMA 장비의 빠른 개발과 도입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반발했다.1) 특히 퀄컴으로부터의 기술 도입에 따른 로열티 부담, 장비 개발 및 양산 일정 등의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외산 장비 도입 우려까지 불거졌다.2)


이와 같은 업계의 거센 저항에 대응해 체신부와 ETRI는 미국 퀄컴의 창립자 어윈 제이콥스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그는 1993년 8월 기자간담회에서 기술 상용화 가능성과 기술료 수준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려 노력했다. 기술료 수준 역시 모토로라 등 다른 국가 기업들과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 밝혔다.3)


이 같은 갈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CDMA 개발을 보다 체계적이고 민간과의 연계를 강화할 수 있는 독립 기구를 설립하기로 결정한다. 1993년 9월 16일, '이동통신기술개발사업관리단'이 한국이동통신 산하 조직으로 출범했다. 사업단은 서정욱 단장이 이끌었으며, CDMA는 물론 개인휴대통신(PCN) 개발 사업도 총괄했다. 동시 출범한 '전파통신기술개발추진협의회'는 장관 자문기구로 기능했으며 의장은 서정욱 단장이 겸임했다.4)5)


서 단장은 회고를 통해 CDMA 개발의 난이도가 1980년대 전전자교환기(TDX) 개발보다 더 크다고 평가했다. 국내에 아날로그 이동통신 원천기술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고속으로 추진되는 CDMA 개발은 단순한 R&D를 넘어 상용화까지 완결지어야 하는 과업이었다. 그는 이를 '가지 않은 길'에 비유했다.


그는 이 때를 가리켜 "어떻게 해서라도 1995년 말까지는 CDMA 시스템을 상용화해야 하는 것은 당위가 되었지만, 당시의 처지로는 도저히 국산 시스템으로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불투명해진 상태였다. 만약 차질이 생겨 신규사업자의 서비스 개시가 늦어지고, 그로 인해 적체가 심화되거나 통상마찰로 비화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은 차치하더라도 엄청난 투자 낭비는 물론 장비 도입 과정에서의 불이익이나 외화 부담을 면하기 어려웠다. 이를 심각하게 생각한 정부는 다각도로 대책을 강구하던 끝에 TDX의 개발 사례를 되새기면서, 그 사업에 앞장섰던 나에게 다시 한번 CDMA라는 고행의 길을 걷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TDX 개발보다 CDMA 위험부담이 훨씬 큰 개발 사업이었다. 번번이 극적인 결단을 내려야 하는 나의 입장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종종 되새기게 했다"라고 회고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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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문지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하며 전세계를 누볐습니다. 이전에 정리했던 이동통신 연대기를 재수정 중입니다. 가끔 다른 내용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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