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부. CDMA 출항, 2G 다사다난 항해
1994년 3월, 오랜 갈등 끝에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 마무리되면서 한국의 이동통신 시장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한국이동통신은 선경그룹의 품으로 들어갔고, 제2이동통신사는 포철과 코오롱 등이 주도한 ‘신세기통신’으로 확정됐다. 이로써 한국은 본격적인 민간 경쟁 체제를 갖추게 됐다. 그리고 곧바로, 새로운 시대의 통신 인프라로 주목받던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기술의 개발이 다시 속도를 냈다.1)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전환되면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투자와 실증의 속도였다. 선경그룹이 인수한 한국이동통신은 곧바로 CDMA 기술개발을 담당하던 이동통신기술개발사업관리단을 전폭 지원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사용자 요구사항에 대한 공동 논의와 기술 결함 해결까지 민간의 실전적 관점이 녹아들었다.
1994년 4월, 사업관리단은 ETRI, 삼성전자, LG정보통신(당시 금성정보통신), 현대전자 등과 함께 CDMA 시스템으로 시험통화에 성공했다. 단말기 간, 단말기와 일반 전화 간 모두 통화 품질은 양호했다. 이를 기반으로 사업관리단은 개발업체에 상용시험계획서를 배포했고, 서울 장안동 한국이동통신 사옥에 장비 설치 기회를 부여하는 조건으로 예비시험을 예고했다.
같은 해 8월, 사업관리단은 삼성, LG, 현대를 대상으로 총 108개 항목의 예비시험을 실시했다. 장안동 연구실에는 선경그룹과 함께 시험장비가 구축됐고, 시험 결과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통과해 상용시험기 설치를 허가받았다. 탈락한 LG정보통신에는 재시험 기회가 주어졌다.2)
이 무렵 CDMA 기술 개발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8월 말, ETRI와 퀄컴이 공동 개발한 CDMA 시스템의 핵심 장비(교환기, 기지국, 위치등록장치 등)가 완성됐다.3) 단말기 분야는 삼성, LG, 현대는 물론 맥슨전자까지 참여해 차량용 시제품 개발에 착수했으며, 휴대형 단말기는 연말까지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었다.
개발된 시스템은 1995년 3월까지 서울 시내 12개 지역에서 약 900명을 대상으로 성능 시험에 들어갔고, 같은 해 10월부터 3개월간 시험 운용을 거쳐 1996년 초 상용화를 목표로 설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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