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부. CDMA 출항, 2G 다사다난 항해
1994년 연구소 울타리 안에서 CDMA 시제품이 시험통화를 마쳤다면, 1995년은 현실 세계에서 진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시기였다. 단말기, 기지국, 교환기까지 독자 개발한 CDMA는 이제 아날로그 상용망과의 연동을 시작으로 상용화의 벽에 도전했다. 상용시험이란 말은 듣기 좋지만, 실상은 ‘전쟁’에 가까웠다.
CDMA는 기존 아날로그 망을 기반으로 주파수를 재활용해야 했다. 주파수 재분배는 단순 기술 작업이 아니었다. 잘못되면 아날로그도, 디지털도 모두 마비되는 고위험 영역이었다. 특히 디지털 장비가 전무했던 환경에서 기존 망에 독자 개발한 시스템을 얹는다는 건 말 그대로 전례 없는 길이었다.
한국이동통신은 CDMA 상용화의 선봉에 섰지만, 망 연동 작업은 이 회사 혼자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었다. 통신장비 제조사, 단말기 제조사, 외국 기술 자문사 등 다수의 주체가 얽혀 있었다. 예를 들어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기존 아날로그 기지국을 멈춘 뒤, CDMA 장비를 붙이고 시험을 진행하는 작업은 국내외 기술진이 참여한 협업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언어도 다르고, 기준도 달랐던 이 ‘다국적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였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개발사업단을 이끌던 서정욱 단장이 1995년 3월 한국이동통신 대표로 선임되면서 전세가 전환됐다. 개발조직은 디지털사업본부로 전환됐고, 서 대표는 회사 전체가 CDMA에 집중하도록 체제를 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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