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부. 제3이통사 찾아라, PCS 고개넘기
1995년 12월 14일, 정보통신부는 신규 통신사업자 허가 일정을 공개했다. PCS(개인휴대통신)를 비롯한 TRS, CT-2, 무선데이터통신, 무선호출 등 새로운 통신사업의 문호를 열고 경쟁 구도를 본격화하겠다는 신호였다. 특히 PCS 분야는 이미 시장이 들썩일 정도로 후끈 달아오른 상태였다.
정보통신부는 1996년 4월 15일부터 3일간 신규 사업자 신청을 접수받고, 6월 중 최종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를 위한 설명회를 1996년 1월 10일로 예정했으며, 1차 심사 기준을 통해 사업자 후보를 추릴 계획이었다.
심사는 3단계로 나뉘었다. 1차 자격심사에서는 ▲사업계획의 타당성 ▲설비규모 ▲재정능력 ▲기술개발 실적과 계획 ▲기술능력 ▲사업자 자격 등을 총 100점 만점으로 평가하고, 항목별 60점 이상, 총점 70점 이상을 충족해야 통과할 수 있었다. 2차는 정보통신발전기금 출연금 심사로, 최고 상한은 1,100억원으로 설정됐다. 동률 발생 시에는 3차 추첨으로 최종 사업자를 결정하는 구조였다.1)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삼성, 현대, LG, 대우 등 4대 그룹은 물론, 제2이동통신사에 도전했던 금호와 신흥 통신주자로 급부상한 한솔, 데이콤, 고합, 효성, 중소기업중앙회 등 각축전이 예고됐다. 제2무선호출 사업자로 선정됐던 10개 사업자 역시 연합 컨소시엄을 꾸려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여유로운 표정은 한국통신이 짓고 있었다. 국가 기간통신망 사업자로서 강력한 유선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었고, 민영화를 준비하며 자립 기반을 다진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PCS와 CT-2 사업에 한해 중복 허가 신청이 가능하고, 2차 출연금 심사가 면제되는 구조 속에서 한국통신은 사실상 ‘한 자리는 확보한 셈’이었다.
이미 1995년 초 한국통신은 이상철 단장을 중심으로 무선통신사업추진단을 출범시키고, PCS 사업 진출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삼성전자, LG정보통신, 대우통신과의 공동개발 협약은 물론, 같은 해 3월 8일에는 여의도 지역을 중심으로 시티폰(CT-2) 시범서비스를 개시해 관련 인프라를 사전에 확보해뒀다.2)
하지만 신규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정보통신부의 행보는 단일하지 않았다. 이석채 장관은 1996년 1월 8일 김영삼 대통령에게 ‘추천제 없는 심사’를 보고하면서 사실상 3차 추첨제를 폐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결과 1차 자격심사 기준을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설명회 일정도 1월 10일에서 연기됐다. 업계 질의서를 수렴해 심사기준을 다시 정비하겠다는 결정이었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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