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부.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도래
1997년,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PCS(개인휴대통신) 서비스 상용화를 앞두고 숨 가쁜 전개를 맞았다. 초반 공동전선을 형성했던 PCS 3사는 7월부터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각자도생’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PCS 진영의 핵심 전략은 유통망 선점이었다. 초기 가입자 확보가 생존을 좌우하는 승부처였다.
LG텔레콤은 ‘오픈마케팅’을 표방했다. 전속 대리점 체제를 과감히 버리고, 단말 제조사뿐 아니라 주유소, 편의점, 슈퍼마켓까지 가입 대행점으로 끌어들였다. 그룹 계열사인 LG정유(현 GS칼텍스) 2700여개 주유소, LG유통(현 GS리테일) 400여개 편의점, LG전자, LG정보통신 유통망까지 총동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통신프리텔은 대리점 개설과 함께 주주사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했다. 금호, 효성, 대우 등 1만2000여 주주사의 유통망을 끌어모았다. 260개 전화국과 200여개 시티폰 대리점도 전력 가동했다.
상대적으로 유통망이 열세였던 한솔PCS는 전속 대리점 중심의 단일 체제를 구축했다. 전국 6개 지역본부와 최신 영업관리 시스템을 연결, 500여개 대리점을 직접 육성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요금에서도 승부수를 던졌다. 기존 이동전화 대비 절반가량 저렴한 요금제를 제시하며 ‘가격 파괴’를 선언했다.1)
이에 맞서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도 대응에 나섰다. SK텔레콤은 약정할인제도의 원형인 ‘보증보험제’를 검토, 2만원 보증보험 가입 시 보증금을 면제하고 가입비를 낮추는 방안을 추진했다. 신세기통신 역시 비슷한 제도를 준비했다.
그 사이 이동전화-PCS 간 대결이 심화되면서,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시티폰은 존재감을 잃었다. 자연스럽게 휴대폰과 PCS폰의 대결구도가 형성됐다. 하지만 7월부터 PCS 사업자들이 공동협력을 종료하면서 5개 사업자의 각자도생이 시작됐다.2)
LG텔레콤은 기존 10월 상용화 계획을 앞당겨 8월 시범서비스를 선언했다. 수도권을 시작으로 10월 광역시, 1998년 상반기 전국망 구축 로드맵을 공개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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