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부. 이동통신5사, 빛과 그림자
1997년, PCS(개인휴대통신) 3사가 야심차게 출범했지만, 현실은 거칠었다. 기대했던 ‘꿈의 통신’은 무너지고, 이동통신 시장은 혼돈의 시대를 맞았다. 단말기 부족, 품질 저하, 과열 경쟁, 그리고 IMF 경제위기. PCS 사업자들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단말기 부족이었다. PCS 사업자들은 유통망을 대대적으로 확보했지만, 막상 팔 수 있는 단말기가 없었다. 초기 초도 물량은 시장의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예약가입자는 속출했지만, 고객들은 단말기를 받지 못한 채 오랜 대기 행렬에 서야 했다. 자연스레 불만은 고조됐다.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PCS 3사는 각각 긴급 대책을 내놨다. 한국통신프리텔은 단말기 지연 보상책으로 기본료와 가입비를 면제하고 300분 무료통화를 제공했다. LG텔레콤은 순차 공급 방식을 도입하고 예약가입 일정을 12월까지 연장했다. 한솔PCS도 기본료 1개월 면제와 300분 무료통화 혜택을 내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200만명에 달하는 예약가입자 중 실제 개통까지 완료한 고객은 상용화 1개월 시점에 15만명에 불과했다.1) 단말기 부족은 다행히 제조사들의 본격 양산 돌입으로 점차 해소됐다.
이 과정에서 국내 이동통신 단말기 시장도 재편됐다. 삼성전자의 ‘애니콜’, LG정보통신의 ‘싸이언(CYON)’, 현대전자의 ‘걸리버(Gulliver)’ 브랜드가 본격 경쟁을 벌이며 시장을 주도하게 됐다.2)
예약가입자 폭주로 인해 고객정보 입력 지연 문제도 발생했다. 제때 예약을 했음에도 전산 처리 지연으로 개통이 늦어지자 고객 불만은 더욱 거세졌다.
품질 문제도 심각했다. 초기 통화 품질이 성패를 좌우할 수 있었기에, 일부 사업자는 무선국 검사를 받지 않고 불법으로 기지국을 가동하기까지 했다. 이는 주파수 간섭을 일으켜 오히려 고객 불편을 키웠다. 정보통신부의 관리·감독을 피하려다 통신 품질 저하라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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