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부. 표류하는 IMT-2000
“IMT-2000 서비스 시기를 연기할 수도 있다.”1)
2001년 새해 벽두, 한국통신 이상철 사장의 발언이 통신업계 전체를 술렁이게 했다. 당초 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 3사는 IMT-2000 상용화 시점을 2002년 5월 한일 월드컵에 맞추기로 약속한 바 있었지만, 이 계획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이 사장의 설명은 현실적 우려에서 출발했다. 당시 비동기식(W-CDMA) 국산장비 개발이 더뎌진 상황에서 무리한 상용화는 노키아·에릭슨 등 해외 장비업체에 국내 시장을 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적 완성도는 물론, 단말기와 부가서비스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시기를 고수하는 건 무책임하다는 경고였다.
이런 기류에 삼성전자도 합세했다. 자사 중심의 비동기식 국산장비 개발을 진행 중이었지만, 상용화 시점을 늦추면 개발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암묵적으로 연기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2) 당시에는 ‘CDMA2000 1x’ 등 기존 CDMA망의 진화 버전으로도 한동안 통신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는 인식도 퍼져 있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단호했다. 1월 8일, 신임 표문수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IMT-2000 상용화 연기는 있을 수 없다”며 정부와 업계를 향한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3) SK텔레콤은 오히려 국산 장비업체의 속도를 끌어올려 약속한 일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술력 확보를 앞세운 LG정보통신 역시 SK텔레콤과 뜻을 같이했다.
정부는 애매한 입장을 고수했다. 사실상 민간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이는 사업자 선정 당시 명확히 제시했던 정책 방향과의 괴리를 드러냈다. 2000년 말 IMT-2000 사업자 선정 심사 기준 중 가장 핵심은 2002년 월드컵 상용화 가능성이었다. 그 약속을 선발된 사업자 스스로 번복하거나, 정부가 방관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정책 일관성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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