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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5G 데이터 폭증,
망 중립성과 제로레이팅

58부. 5G 초기 대중화 물결

by 김문기

2019년 4월,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는 미답의 영역에 발을 들였을 때, 시장의 열광 뒤에는 차가운 자본의 논리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5G가 약속한 '초고속·초대용량'의 세계는 역설적으로 가입자들에게 '데이터 요금 폭탄'이라는 공포를 안겼고, 이 틈을 타 이동통신 3사가 구사한 전략은 바로 '제로레이팅(Zero-rating, 데이터 무과금)'이었다.


하지만 이 달콤한 제안은 곧 '모든 트래픽은 동등하게 처리되어야 한다'는 ICT 생태계의 헌법, '망 중립성'의 근간을 뒤흔들며 통신사와 콘텐츠 사업자(CP) 사이의 주권 전쟁으로 번졌다.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한 '5G 정책협의회'의 치열했던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5G의 화려한 등장과 ‘데이터 소모’의 공포


2019년 초, 한국 통신 시장은 LTE의 한계를 넘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클라우드 게임 등 이른바 '포스트 스마트폰' 콘텐츠에 목말라 있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실핏줄로서 5G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밀어붙였고, 기업들은 수조 원의 설비 투자비를 회수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 소비자들 역시 새로운 기술에 열광했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시간당 수 기가바이트(GB)를 소모하는 고용량 콘텐츠를 즐기기엔 기존 요금제 체계와 데이터 제공량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제로레이팅'은 시장의 요구를 관통하는 마법 같은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통신사가 특정 앱의 데이터 이용료를 면제해줌으로써 소비자 부담을 낮추고, 5G 가입자를 유인하는 마중물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망을 가진 사업자가 특정 서비스에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위험 신호이기도 했다. 기술의 진보가 정책적 가치와 충돌하기 시작한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플랫폼 포식" vs "투자 유인" 사이의 전쟁


갈등의 정점은 2019년 5월 24일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5G 정책협의회' 결과 보고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통 3사는 5G 생태계 초기 형성을 위해 제로레이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SK텔레콤은 자사 OTT인 '옥수수(Oksusu)'와 쇼핑 플랫폼 '11번가'를, LG유플러스는 'U+아이돌Live' 등을 데이터 무과금의 선봉에 세웠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중소 콘텐츠 사업자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격렬히 반발했다. 자본력이 막강한 통신사가 자기 계열사 서비스만 우대할 경우, 망 이용료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스타트업은 시장 진입조차 불가능하다는 논리였다.


여기에 5G 핵심 기술인 '네트워크 슬라이싱(Network Slicing)'이 기름을 부었다. 물리적인 망 하나를 가상으로 쪼개 자율주행이나 원격 의료 등 특정 서비스에 '전용 차선'을 내주는 이 기술을 망 중립성 예외인 '특수 서비스(Specialized Service)'로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평행선이 이어졌다.


이통사는 "5G의 본질은 차별화된 품질 제공"이라며 예외를 요구했고, 콘텐츠 진영은 "일반 인터넷 이용자의 속도를 저해하는 급행 차선"이라며 맞섰다. 결국 정부는 2019년 말, 제로레이팅에 대해 사전 금지 대신 부당한 경쟁 제한 행위가 발생할 때만 개입하는 '사후 규제' 방침을 세우며 사실상 이통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유료 베타테스터'가 된 대중과 권력의 이동


이러한 정책적 결정은 산업 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통사들은 마케팅 자율성을 확보하며 5G 가입자를 빠르게 끌어올렸으나, 그 과정에서 소비자의 신뢰는 상처를 입었다. 이통 3사가 100Mbps의 미세한 속도 차이를 두고 "치졸하다"는 설전을 벌이며 1위 경쟁을 벌이는 동안, 정작 실내 커버리지와 불안정한 품질에 고통받던 가입자들은 스스로를 '유료 베타테스터'라 부르며 냉소했다.


제로레이팅 혜택이 집중된 대형 플랫폼들은 더욱 비대해진 반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 앱 개발사들은 통신사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


일상생활에서는 통신사가 제공하는 전용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가두리(Lock-in)' 현상이 가시화되었다. 데이터 소모가 없는 이통사 앱을 우선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중소 개발사들의 혁신적인 서비스들은 가시권 밖으로 밀려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5G는 통신사가 단순한 망 사업자를 넘어 콘텐츠와 플랫폼까지 장악하려는 '포식자'로 진화하는 변곡점이 되었다.


망 이용료 분쟁이라는 거대한 폭풍의 전야


2019년의 망 중립성 및 제로레이팅 논란은 대한민국 ICT 역사에서 기술의 진보가 정책적 가치와 충돌했을 때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당시 정부가 택한 '사후 규제' 중심의 유연한 기조는 5G 산업 활성화에는 기여했지만, 동시에 통신사와 글로벌 거대 CP(구글, 넷플릭스 등) 간의 '망 이용료 분쟁'이라는 더 큰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이 시기의 논쟁은 훗날 "망을 쓰는 자, 그 대가를 지불하라"는 통신사의 외침과 "망 중립성은 이용자의 권리"라는 콘텐츠 사의 방어 논리가 충돌하는 구조적 토대를 마련했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를 넘어 세계 최고의 5G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치러야 했던 이 정책적 진통은, 이제 6G와 AI 시대의 연결을 정의하는 거대한 폭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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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문지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하며 전세계를 누볐습니다. 이전에 정리했던 이동통신 연대기를 재수정 중입니다. 가끔 다른 내용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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