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2002한일월드컵,
SK·KT EV-DO 상용화

26부. 표류하는 IMT-2000

by 김문기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축포를 쏘기 전, 국내 이동통신 업계는 이미 또 하나의 ‘세계 최초’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비동기식 IMT-2000(WCDMA)의 상용화 지연이 거듭되자, 통신사들은 CDMA2000 1x의 다음 진화 기술인 ‘EV-DO(Evolution-Data Only)’를 선택지로 꺼내 들었다. ITU(국제전기통신연합)가 인정한 정식 3세대(IMT-2000) 기술이다. 최대 전송속도 2.4Mbps, 본격적인 ‘메가(Mbps) 시대’의 개막이었다.


EV-DO는 미국 퀄컴이 개발한 HDR(High Data Rate)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음성을 제외하고 데이터 전용으로 설계된 만큼, 킬로급 전송 속도에 갇혀있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혁신이었다. SK텔레콤과 KTF는 각자의 명운을 걸고 EV-DO 상용화 경쟁에 돌입했다. WCDMA의 불확실성과 상용 일정 차질 속에서, 새로운 ‘세계 최초’ 타이틀이 그들 앞에 놓였다.


가장 먼저 움직인 쪽은 KTF였다.1) 2001년 11월, 경기도 일산 시험센터와 인근 8개 기지국을 활용해 상용 시스템 평가를 시작했다. 당시 전략은 명확했다. 2002년 5월 월드컵 개막 이전에 서비스를 시작하겠다는 것. KTF는 이듬해 1월 장비사를 확정해 수도권 중심으로 망을 조기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SK텔레콤은 한발 늦게 출발했지만, 더 빠른 도착을 노렸다.2) 2001년 11월 서울과 과천, 안양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 서비스를 개시했고, 이후 1월 28일 인천 지역에서 상용화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3) KTF는 이를 ‘휴대폰도 없는 시범서비스 수준’이라 평가절하했지만,4) SK텔레콤 입장에서는 ‘세계 최초 상용화’라는 타이틀을 확보하기 위한 선제 행동이었다.


문제는 단말기였다. 양 사 모두 네트워크는 준비했지만, 이를 지원할 휴대폰이 없었다. 초기 상용화는 PDA나 노트북에 장착하는 PCMCIA 단말기 중심이었다. 요금은 패킷당 2.5원. 문자 대신 동영상, 음성 대신 영상통화를 향한 첫 발걸음이었다.


이후 상황은 빠르게 진화했다. 2002년 5월 10일, KTF가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EV-DO 상용 서비스를 정식 개시했고,5) SK텔레콤도 전국 26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인 망 확장에 나섰다. 같은 해 6월, 삼성전자가 EV-DO 전용 휴대폰 ‘SCH-E100’을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대중 서비스 시대가 열렸다.6)


특히 2002 한일월드컵은 이 기술의 절정이었다. SK텔레콤은 ‘Be The Reds’ 슬로건을 내세운 붉은 악마를 후원했고, KTF는 ‘Korea Team Fighting(KTF)’이라는 명칭을 차용해 브랜드 알리기에 나섰다. 양사는 2,000대가 넘는 임대 단말기를 통해 VIP, 외신 기자들에게 기술력을 시연했다. CNN, WSJ, 파이낸셜타임즈, ZDF, 요미우리 등 세계 주요 언론은 앞다퉈 한국을 ‘CDMA 종주국’으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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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문지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하며 전세계를 누볐습니다. 이전에 정리했던 이동통신 연대기를 재수정 중입니다. 가끔 다른 내용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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