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손이 커’라고 할 때, 진짜 그 사람의 손바닥과 손등의 크기를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씀씀이가 후하고 넉넉한 사람에게 하는 말인데, 내 경우는 음식과 관련해서 많이 사용한다. 대게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집에 사람을 초대해 음식을 직접 준비할 때, 또는 초대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줄 때 음식을 넉넉히 시키거나 만드는 사람에게 손이 크다고 한다.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반대로 손이 작다고 하면 왠지 궁상맞고 쩨쩨한 느낌을 준다. 통이 크다와 작다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저 사람은 통이 커’라고 하면 왠지 대범하고 화통한 느낌이고, ‘통이 작은 사람’은 좀스럽다 못해 소심하기까지 한 느낌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손도 작고, 통도 작은 편이다. 실제 손 크기도 작아서 회사일로 만난 사람과 악수를 할 때면 왠지 모르게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느낌이다. 주말에 종종 딸의 친구 가족이 놀러 오는데, 준비한 음식(이라 봐야 배달시킨 피자나 치킨 따위지만)이 적어서 민망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민망함을 겪고 다음번에 만날 때는 음식을 좀 넉넉히 주문하기도 하지만, 그다음에 만날 때는 또 ‘저희는 괜찮은데 많이 드셨나 모르겠어요’ 같은 말을 반복한다.
식당에서 음식이 남도록 주문하는 일도 별로 없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포함한 우리 세 가족이 식당에 가면 눈치가 보이긴 하지만 대개 2인분을 주문한다. 간혹 3인분을 주문하며 남기게 되거나, 다 먹기 위해 무리를 하게 된다. 가끔 친구들에게 술을 살 때도 내 체면을 차리기 위해 음식을 과하게 주문하지 않는다. '일단 이것만 주문해보고 모자라면 더 시키자.' 막상 다 먹고 나면 배가 차 더 주문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회사 점심시간에 백반집에 가면 가능하면 반찬을 추가로 더 달라하지 않고, 남아 있는 반찬을 모두 비운 경우에만 더 달라고 한다. 동료들과 식당에 가면, 항상 내가 아닌 동행이 ‘여기요!’하고 식당 아주머니를 불러 세워 반찬을 더 달라고 해서 그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바쁜 식당에서 동분서주하는 아주머니에게 반찬을 더 요청하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여기요 계란말이 좀 더 달라니까요!’ 끝내는 소리까지 쳐야 하는 일도 벌어진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양을 딱 맞게 주문하거나 만드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 한데, 대게는 음식이 부족한 것보다는 남는 걸 선호하는 듯하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베풀고자 하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본인의 면도 살리고 옹색한 이미지를 주지 않고 싶은 마음도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손이 작다거나 통이 크지 않다는 건 부정적인 어감이 강하다.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감수하고서라도 나는 손이 작은 사람이 되는 것을 택했다. 냉장고 두 개에 김치냉장고도 모자라 별도의 냉동고까지 사서 음식을 쌓아두는 어머니의 모습에 질려서일 수도 있다. 싸주신 음식을 1년쯤 지나서 싱크대와 변기에 버리는 일이 반복돼서 일 수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는 것보다는 조금은 모자라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옛날이야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가 아니던가. 식사를 마칠 때 왠지 부족한 느낌이 들어도 조금만 기다리면 포만감이 오는 경험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조금 부족한 듯 먹는 게 건강에 이롭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예전에는 남은 음식은 어떻게든 버리지 않고 (주로 어머니들이) 먹어 치웠다. 제사라도 해서 전이 많이 남은 경우에는 전 찌개라도 만들어 먹는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저 잔반 처리용 찌개다. 최근에는 이마저 쉽지 않다.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먹는 일이 많아져 집에 남은 반찬이나 찌개를 처리할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치찌개를 끓여서 한 끼 먹고 남았는데, 다음 날부터 며칠 연속으로 외식을 해 다시 먹을 때는 남은 찌개가 상해있거나, 별로 먹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내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어보면 거의 매일같이 반쯤 썩은 과일, 몇 년 동안 보관되었을지 모를 가루들, 잡곡들이 뒤엉켜 있다.
음식이 버려지는 건 점심시간의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반찬이 부족하면 일단 더 달라고 한다. 상추는 남기더라도 일단 깻잎은 더 필요하다. 물론 상추보다 깻잎을 좋아하는 식성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 먹고 일어날 때 테이블 위에 남아 있는 콩자반, 깍두기를 보면 안 그래도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식당 아주머니에게 소리까지 질러가며 반찬을 더 달라고 한 게 조금은 머쓱해진다. 남은 반찬은 버려지거나, 간혹 다른 손님들에게 재사용될 것이다. 그 다른 손님이 내가 될 수도 있다.
큰집에 가서 푸짐하고 넉넉한 큰어머니를 뵈면 내 마음도 넉넉하고 편안해진다. 새삼스레 ‘고향의 맛’과 같이 광고에나 나오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이다. 호방하고 통이 큰 이모부와 식당에 가면 평소에 먹지 못했던 한우 등심이나 생참치를 맘껏 먹을 수 있다. 나도 가끔은 그들처럼 품이 넉넉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손이 작은 것은, 잘난 환경의식이나 윤리의식 때문이 아니라 그저 살아오면서 혹은 태어나면서 만들어진 내 옹졸한 성격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손이 커질 일은 없을 듯하다. 나는 여전히 동료들이 반찬을 더 달라고 외칠 때면, 성가신 반찬 추가 요청을 그들에게 미루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이고, 바쁜 아주머니를 채근함에 미안한 마음이 들고, 남아 있는 반찬들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며 마음의 무거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