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플레이트
인사이드 아웃을 볼 땐, 동그란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턱끝까지 조여오는 듯한 두터운 목폴라 니트를 입은 새드.에게 애정이 갔는데, 새드도 조이도 모두 사랑스럽다.
조이보다 새드에게 마음이 간 건,
새드를 통해 지난 내 모습 그리고 요즘도 종종 시시로 보이는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드가 귀엽다. 철퍼덕 하고 쓰러지는 모양새가 꼭 나와 같아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러면서 새드에게 "새드야, 일어나! 일어 날 수 있어!"하고 응원 하기도 했다.
새드와 나를 동일시하며 몰입하며 봤던 기억이다.
기쁨이도 슬픔이도 내겐 다 같은 것이다.
하나다.
신선한 식재료로 그때그때 직접 요리해 먹는 한 끼.가 내 기분과 감정을 만든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 내가 먹는 음식은 순전히 내 선택이다.
망고 플레이트
미니 주먹밥, 양배추 쌈밥, 양송이 버섯 볶음, 망고를 조합한 점심 한 끼.
나는 왜 쓰는가.
도대체 어떤 날은 이토록 폭풍이 휘몰아치듯 쓰고 있는가.
글쓰고 있는 나를,
경험자아를 알아차린다.
글쓰는 데 부담이 없다.
글쓰는 데 의무는 없다.
글쓰는 데 어떤 규칙도 없다.
글쓰는 데 어떤 형식도 없다.
글쓰는 데 어떤 제약도 없다.
글쓰는 데 어떤 조건도 어떤 한계도 없다.
순전히 내 이야기.인 탓이 크다. 내 이야기라서, 부담없을 테고 가식 없이 어떤 걸 의식할 필요 없음.으로 내 글은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나보다.
글쓰기가 내겐 올리브오일이 프라이팬에 발리듯 매끄럽고 순하디 순한 행위다.
이런 짧은 글 하나에 5분이면 충분하다는 것도 내가 글을 쉽게 쓰는데 효과적이다.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다는 시공간의 제약 없음.도 내겐 자유다.
글쓰기는 내게 자유다.
문득 하루에도 쓰고 싶으면 몇 개의 글을 쓰는 날 알아차리며,
"나는 도대체 왜 쓰는가?"라는 질문이 일었다.
특이한 것은, 도대체.라는 말이 강하게 밀어부쳐졌다는 건데,
정말이지 내 안에 글쓰기 괴물이 사는 건지.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덤덤하게 무심하게 건조하게
이렇게 글쓸 수 있을까.
내 글쓰기엔 희로애락이 없다.
딱 내 마음상태와 닮았달까.
건조함이 좋아졌다.
내 하루도, 내 일상도, 내 인생도, 내 글도, 내 사랑도
너무 촉촉하지도 않게.
너무 건조하지도 않게.
적당한 건조함과 적당한 촉촉함 그 사이.
고요한 흐름의 사선을 탔으면 좋겠다.
내 글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한.
내 글쓰기는 나다.
이렇게 글 쓰는데 고백하자면
2-3분이 걸릴 때가 많다.
글쓰기가 내게 어떤 의무감이나 부담이 아닌 이유다.
자연스럽다. 자연과 같다.
절로 손가락이 움직인다.
마치 누군가가 쉼없이 내게 알려주듯이.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내 글이란,
순전히 나 다워지도록,
나 자신이 되도록
날 위로하기 위해
날 다독이기 위해
써내려가는 스토리이자 메시지다.
스무살 초중반,
사회 초년생일 때,
내가 좀 더 지혜로웠더라면,
좀 더 단단했더라면,
관계쪽으로 좀 더 똑똑했더라면 어땠을까.싶을 때가 있다.
그랬더라면-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좀 덜 고생하지 않았을까.
좀 덜 슬프지 않았을까.
좀 덜 아프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늦은 깨달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이따금씩 훅 이런 생각들이 휘몰아칠 때가 있다.
살면서,
살아보니,
마음의 평안이,
마음이 평정을, 평화를,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평온한 마음 상태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경험은, 그런 삶이란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은 상태,
어쩌면 그 자체로 만족하는 삶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젠 내게 오는 그 무엇이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만족해야지.
만족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는다.
수용일테고
받아들임일테고
알아차림 일 것이다.
내겐 잠이 보약이다.
푹 잘자고 일어나면 또 다시 괜찮아지겠지.
맑아지겠지.
몸을 움직여본다.
몸의 움직임을 통해 사특한 감정들을 통제한다.
이럴 수록 내 안을 더욱 촘촘히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