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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Aug 28. 2024

내가 되어가는 순간

돌다리를 건넜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책 한 권 들고 이어폰을 끼고 그렇게 한참을 한 시간을 걸어왔다. 


내가 가는 방향으로 가려면 쭉 가다 어느 지점에서든지 돌다리로 천을 건너기만 하면 되는데, 늘 마음가는대로 가고 싶은 지점에서 돌다리를 건넌다. 


같은 일상이어도 같은 산책이어도 날마다 새롭게 느끼는 것도 순전히 내 몫이겠다. 


날씨가 화창한 것과는 달리 물살이 조금 거셌다. 그러다 중간지점에 이르러서는 돌다리 3개가 이미 옅게 물에 깔려 있어 격정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분명 멀리서 봤을 땐 보이지 않았는데, 순간 당황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건너면 되는 일.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돌다리를 건너면서도 돌다리를 보면서도 거센 물살을 바라보면서도 나.를 본다. 내 삶을 본다. 


수십개의 돌 다리 중 3개만 물에 잠겨 건넜을 뿐인데, 운동화 앞 부분이 살짝 젖었다. 살짝이지만 스며들어 양말이 축축히 젖은 느낌이 들었다. 


살면서 내게 오는 장애물이나 난관이, 위기가 어쩌면 그리 큰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헤쳐나가면 되는 일. 반드시 일어나면 되는 일. 그 끝엔 반드시 아름다운 것이,  더 큰 깨달음이 찾아온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오늘 읽은 헤르만 헤세의 모음집 중 내  가슴속에 새긴 구절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데미안-


돌다리를 건너는 일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거센 물살을 헤쳐 가는 내 자신을 느끼고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안의 두려움과 불안은 집착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닫게 된 후 나를 다스리고 다독이는 법을 알게 됐다. 


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완전할 순 없어도 적어도 나 자신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걸어오면서 1시간 남짓 책 1권을 다 읽었다. 마지막 책 장을 덮었을 때 그 환희.가 있다. 


"독서를 할 때마다 한 권 한 권의 책에서 기쁨이나 위로, 마음의 평화와 힘을 얻지 못한다면

문학사를 알고 있다 해도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생각없는 산만한 독서는 눈에 붕대를 감고 

아름다운 자연을 산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기 자신과 일상을 잊지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더 의식적으로 더  성숙하게 단단히 

붙잡기 위해 독서를 해야 한다."


-헤르만 헤세, 독서에 대하여-


나는 오늘 이 문장을 만났다. 아름다웠다. 그의 한 권의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펼쳐진 페이지에서 만난 이 문장들. 


작가 자신은 누군가의 삶을 더 의식적으로 더 성숙하게 단단하게 붙잡아 줄 그런 사람이란 걸 알았을까. 


고전작가들과의 만남은 내게 늘 위대한 수업이다. 


나는 내 운명을 사랑하기로 했다. 

이 책 한 권으로, 

산책 한 걸음으로, 

나의 오늘은 빛났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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