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면 비울수록 어쩜 이토록 채워질까. 풍족한 기분일까. 텅빔으로써 텅비지 않은 기분일까. 오래 쓴 건, 묵은 건 비워내고 새 것으로 채우기도 일년 새 입지 않은 옷과 물건을 비워냈다. 1인 가구의 삶에서ㅡ 심플한 것이 확실하게 정신적으로 유리한 부분이 있다.
이사를 곧 분명 할텐데, 할건대ㅡ 실은 그 어떤 것도 아직 정해진 게 없는데도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다. 이사가기로 마음먹었으니 이사가겠지. 갈테지.하는 나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도 있다. 즉흥적인 성미라 이사도 코 앞에 두고 휘리릭 해낼 것임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어서도 있다. 이번엔 다른 때와는 다르게 좀 침착하게 차분하게 숙고해서 살 곳을 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우체국 박스 3개 짐을 쌓아 올렸다. 침구류 제외 나머지는 이사갈 때쯤 돼서 28인치 캐리어 3개로 마무리하면 되겠다. 이쯤되면 지금 집이 내게 더는 설레지 않음을, 내 마음은 이미 떠났음을 실감한다.
주말 내 갑작스레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즉각 감정을 알아차렸는데ㅡ 즉각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노래 한 곡에 걷다가 노래 한곡에 뛰다가를 돌아가며 몸을 움직이고 나서야 그렇게 한참을 뛰고 나서야 나대던 감정이 가라앉았다. 침착해졌다. 감정은 내가 아니고 감정은 몸의 문제란 걸 잘 알게 되면서 더는 생각과 싸우지 않게 되었다.
지난 달 제주 올레7코스를 1시간쯤 걸었다. 완주가 목표가, 목적이 아니었어서. 그저 걷고 싶었고 바다와 만나고 싶었고 하늘과 닿고 싶었고 자연과 하나되고 싶은 것이었어서 만족했고 감사했다. 우거진 숲같은 길을 걸을 땐, 어디에선가 스스스슥. 분명 동물이 아닐까.싶었고 분명 생물이었으리라. 그럼에도 무섭지 않았는데 너와 내가 다르지 않아.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한 십년 전부터 사진찍는 일이 줄었다. 거의 없다고 보는데ㅡ 삶의 가치관과 태도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이란 설명이 맞겠다. 사진을 찍다보면 사람을ㅡ 풍경을ㅡ 음식을ㅡ 자연을 제대로, 있는 그대로 볼 기회를 놓친다. 순간을 놓치게 된다.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도 고흐의 무덤 앞에서도 제주의 황홀한 자연 풍경 앞에서도 웬만해선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이 없다. 이 순간에 머무는 일, 내겐 그것이 의미있는 것이 된다.
과거는 없다. 미래도 없다. 알면서도 이따금씩 감정이란 녀석이 강펀치를 날린다.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음을, 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차리면 더는 그 감정이 날 파괴하지 못한다. 잠식하지 못한다.
나이들어가니 좋은 점이 많다. 삶에 초연해진달까. 그것은 난 다 알아요.하는 오만이나 무지가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가 된다. 수용, 내맡김, 받아들임이다. 화나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화나지 않는다. 내 안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나이들어갈수록 친절함에 대해 생각한다. 친절함엔 돈이 들지 않는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수고롭지 않다. 나의 마음이 타인의 마음에 닿는 일, 너와 내가 하나임을 확인시켜주는 일 같달까. 친절함은 사랑이고 사랑은 친절함이다.
사랑이란 과연 개인의 것일까. 사랑이라는 기존의 인식, 관념에서 벗어나ㅡ 학습되어온 기계론적 사고관에서 벗어나 전체론적 관점에서 바라봄이 있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직관적인 앎에 가깝다.
내면의 확장에 관심이 있다. 유한한 삶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하나.
기대하지 않는다.
예측하지 않는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감정에 이토록 취약하기도 하다. 이 또한 받아들인다. 수용한다.
알아차리면 된다.
내게 중요한 건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 내 장에서 올라오는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
내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 스토리텔링을 바꾸어나가는 것.
몸의 움직임을 통해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다.
언제 마흔이 되었나.싶을만큼 서른에서 마흔은 정말이지 그 어느 때보다도 쏜살같았다.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지나보니 그간 날 옥죄던, 날 참 힘겹게 했던 지나간 것들에 대한 후회, 아쉬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정말이지 실체없는 것이었다. 없는 것이었다. 망상이었다.
눈떠보니 마흔의 문 앞에 와있는 기분.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일 때가 있다. 그러면서 시간이란게 있는가. 분명 인간의 뇌로는, 인간이 가진 언어로는 분명 설명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저 너머의 것에 대한 신비로움 혹은 경외감으로 이어지곤 한다.
내가 나이들고 보니, 부모님도 그마만큼 나이가 드셨다. 노쇠함이 확연하게 느껴질 때면 눈물이 난다. 생사일여. 인간에게 나이들어감이란, 죽음이란 너무도 당연한 자연의 이치인 걸 알면서도ㅡ 약하디 약해진 부모님의얼굴, 머리카락, 손등, 발등, 몸을 보고 있자면 방 한 켠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한참을 눈물바람을 하곤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하곤 한다.
나의 노화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나이들어가서일까. 아주 조금 철이 들어가고 있는 걸까. 지난 밤엔 엄마와 늦은밤까지 이야기를 하다 방으로 들어와 침대 위에서 옆으로 누운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야 말았다. 멈추지 않아서 혼났는데ㅡ 어린시절부터 기억이 파르르 펼쳐지면서 "엄마도 귀한 딸이었구나. 엄마도 소녀였구나. 엄마도 여자구나..." 태어나자마자 또 다시 일 년을 꼬박 사랑으로만 정성스레 키워냈을 엄마의 모습이 상상됐고 엄마의 사랑이 기억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스크린에 상영되는 듯했다.
나이들어갈수록 마음 근력은 아주 조금씩 단단해져가는 것 같은데 엄마 앞에선 마음이 한없이 유해지고 약해지고 어느 날은 슬퍼지기까지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한데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더는 늦지 않게 엄마에게 잘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
사랑의 영역은 경계가 없다. 무한함이다.
사랑하기. 친절하기.
변함없을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