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한 면발과 따뜻한 우동국물이 생각나 냉큼 우동 한그릇 만들어 먹었다. 두부까지 노릇노릇하게 부쳤다. 오물오물 씹고 있는 나를 알아차린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동을 먹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우동을 먹고 있는 나를 한걸음 물러나 바라본다.
종종 멍때릴 때가 있다. 시선이 한 곳에 머물면서 절로 멍때릴 때가 있는데 고요하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기대 앉았다. 자연스레 노트북을 켰는데, 조금 전 "통통한 면발과 따뜻한 우동국물이 생각나 냉큼 우동 한그릇을 만들어 먹었다."라고 첫 문장을 적어내려가면서 문득 일었다. 가만 있어보자. "정말 스토리구나. 내가 편집한 스토리구나.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구나..." 어쩜 세상은 날 알게하는 것들로 가득한지. 내 안에 세상이 있다.
글 쓸때도 무엇을 써야지.하는 것은 없다. 절로 손이 간다는 것과 한 생각 일면 혹은 한 단어나 한 문장 하나가 스위치 켜지듯 스파크가 일면 알아서 써지게 된다. 무작위함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괜찮다. 글쓰다보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데 그것은 붙잡음이 아니라 let it stay.가 된다.
이제 정말이지 가볍게 한 번 살아봐? 인생이 놀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 살아봐? 인생을 재밌는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 살아봐? 어느새 두려움은 사라지고 용기가 그 자리를 채운다. 현대사회에서 어릴적부터 가정이나 학교나 사회에서 학습돼 온, 세뇌되어온 것들에 대하여ㅡ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하여ㅡ 과연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옳고 그름, 좋고 싫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왜 여기에 왔는가?
감정으로 초토화된 내 마음 안에서 나는 무엇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겠는가?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통찰과 온화한 지혜는 감춰지고 감정이 나를 지배하는 현실을 살게 된다. 지극히 좁고 아둔하고 어리석은 개인적 관점에서 벗어나 내가 곧 전체다 전체가 곧 나다.라는 전체성과 온화함 그 자체로서, 순수의식 그 자체로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가벼운 삶이요, 자유로운 삶이요, 창조적인 삶일 것이다. 잡념이 사라지면 본래의 것은 절로 드러나게 된다. 생겨난 것이 아니라 본래 늘 그 자리에 있는 그것이다.
"나는 내 삶을 왜 이토록 힘겨워하는가? 버거워하는가? 고통스럽게 느끼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주의를, 그 의도를 내 안으로, 내면으로 돌리게 되어있다. 마치 인간이란 본래 이렇게 나아가도록 설계되어진 것처럼. 내면으로 주의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고독도 깊어진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내 환경들이 어느 순간 그리 되어있는 것 같기도. 나도 너무 시끌벅적한 곳을 가지 않게 되는 것도 있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인 것도 절로 그리되었다는 설명이 맞겠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고 심심하지 않다. 고요와 평온에 익숙해진 덕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캐나다의 내과의사이자 <scattered mind>, <the myth of normal>의 저자인 가보르 마테는, "being alone 과 being lonely엔 차이가 있다. 혼자있다는 건 사실이고 외로움은 감정적인 에너지를 동반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다."라고 했다.
혼자만의 시간은 선물이다. 인간은 혼자일 때야 비로소 내면을, 자기 자신을 궁금해한다. 내가 사랑 그 자체라는 걸 알면 내 안에 모든 것이 있다, 내가 전체라는 걸 알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전체적 사랑이 남는다.
나를 사랑한다는 건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이고
모두를 사랑한다는 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초기원시사회로부터 오랜시간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ㅡ
내면의 여정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