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어도 돼요

by 사탕볼

하루 중 아이들도 볼선생도 가장 행복한 시간. 급식 먹으러 가는 지금.

마음 같아선 1학년 어린이들과 스머프 노래라도 같이 부르며 가고 싶다.

저기 2학년 아이들이 학급에 대출된 학교 도서관 책을 몇 권씩 들고 선생님을 따라서 가는 모습이 보인다. 방학 전에 각 교실 책이 분실되지 않게 하려고 사서 선생님께서 이번 주까지 책을 갖다 달라고 연락을 주셨다.

2학년 책개미들 꽁무니에 나의 애제자가 울고 있는 게 보인다.

예나는 책을 하나 떨어뜨리고 다시 주우려고 애를 쓰고 있다.

떨어진 책을 주우려고 몸을 숙이면 한 권은 줍지만 또 한 권이 떨어지고, 다시 주우려고 숙이면 또 한 권이 떨어지고....

인생 최대의 난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눈앞이 캄캄할까...

친구들은 자꾸 멀어지려고 하고 자기가 들고 가야 하는 책은 아무리 주우려고 해도 또 떨어지고.

"우리 힘센 준민이~ 책 2권만 들어주면 안 될까?"

"네! 제가 들 수 있어요. 더 들고 가고 싶어요."

"아니야, 2권만 부탁해."

"저도 들 거예요."

옆에 있던 남학생도 거든다.

두 친구에게 나눠서 부탁하고 남은 두 권을 예나 손에 한 권씩 들려주고는 얼굴에 눈물을 닦아준다.

"예나 이 책 들고 갈 수 있지?"

대답도 않고 친구 뒤를 따라 뛰어간다.


예나는 작년에 1학년 하며 맡았던 아이다. (예나 이야기는 이미 브런치북에 한번 썼다. 애제자 인증 ^^)

예나는 수업 중에 기분이 안 좋아지거나 뜻대로 안 되는 게 있을 때면 아기처럼 우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우는 예나를 무릎에 앉히고 수업을 한다. 선생님이 친구를 안고 수업하는 게 익숙한 아이들은 상관없이 수업에 집중한다.

무릎에 앉히고 팔로 감싸 안으면 울다가도 얌전해진다.

안고 있으면 포근하고 따뜻해서 아이보다 선생이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너무 예뻐서 안겨있는 뒷모습을 찍고는 혼자서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본다.

1년을 그야말로 업고 안고 키운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고 나니 오후 수업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1년 가르친 나도 이런데 아이가 학교에서 울었다는 말을 들으면 부모는 오죽할까.


수업이 다 끝나고 돌봄 교실로 이동하는 시간.

교실 뒷문에서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우산, 신발을 제대로 챙겨가는지 확인하는데 저기서 예나가 돌봄 교실을 향해 걸어온다.

표정이 밝아 보여 반가운 마음에

"예나~ 이제 기분 좋아졌어?"

하고 다가간다.

그런데 예나가 뚱하게 쳐다본다. 당신은 누구길래 나한테 아는 척을 하냐는 표정이다.

괜히 서운하다.

충분히 잊을 수 있다. 벌써 6개월 가까이 지나고 지금 교실엔 새로운 선생님이 있으니.


선생님은 잊어도 돼.

그래도 내 품에 안겨있을 때 행복했던 그 순간은 마음속 어디 한 구석에 남아있겠지.

그거면 충분하단다.

뒤통수만 봐도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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