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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Jan 26. 2020

사물 쓰기, 7. 새니타이저

공중 보건의식의 강화를 기원하며

2019.09.19 100일 글쓰기 #16

새니타이저 한 통을 벌써 다 썼다. 60ml밖에 되지 않는 작은 물건이라 매일 쓰다 보니 빨리 닳기는 했다.

그래도 좀 아쉽다. 몇 개 더 사둔 게 있긴 하지만 차라리 펌핑이 되는 대용량으로 새로 살까 보다. 이렇게 쪼그매서야 어찌 대업을 도모할 수 있으리오.

다 썼지만 또 있지롱


나의 조그마한 결벽증

매일 마음속으로 공중위생에 대한 대중의 의식 결여에 대해 욕설과 비속어로 비난을 하고 있다. 다만 그런 사람 치고는 또 엄청나게 결벽이 있는 편은 아니다. 꼼꼼하게 방 정리를 한다든가, 반드시 환기를 하고 바깥에 나간다든가 하는 것은 남 얘기다. 공기청정기는 좀 심하다 싶을 때만 켜 두는 편이다. 이런 성격이니 먼지가 조금 묻어있는 정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사실, 내가 신경 쓰는 건 손이다. 손을 씻을 기회가 생기면 일단 씻고 본다. 기본적인 위생 관념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그럴지도 모르지만, 기회만 엿보이면 너구리처럼 손을 씻고 싶어 진다. 오죽하면 손만 씻으러 화장실에 다녀오기도 한다. 좀 유난스러워 보이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평소 손이 건조하게 느껴져서기도 하지만, 뭔가를 하고 나서 손이 오염된 기분을 참을 수가 없다. 집에서도 집안일을 하게 되면 중간중간에 손을 수시로 씻는다. 뭐 하나 만지고 씻고, 뭐 하나 닦고 씻고, 쓰레기 하나 버리고 씻고. 그런데 왜 이렇게 손은 건조한 지. 손을 수시로 씻다가 손이 더 건조해지는 빌레 마에 봉착한 상태다. (고맙게도 이 고민은 작년에 친구 ㅎ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이솝 핸드크림으로 해결 중이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핸드크림 이야기를 꺼내며 다시 이어보겠다)


밖에 나갔다 와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잠깐 집 앞의 편의점에 다녀와도 손을 봑봑 씻지 않으면 안 된다. 가볍게 나갔다 와서 만진 거라곤 엘리베이터 버튼과 편의점 문과 내 지갑밖에 없다고 해도, 어쨌든 집 밖의 사람 손이 탄 것 아닌가. 으, 더러워. 엘리베이터 버튼도 그래서 손가락으로 잘 안 만지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주먹을 쥐고 손가락 뼈마디로 버튼을 누르게 된다. 얼마 전에는 회사의 어느 임원 분도 그렇게 행동한다고 하셨는데, 그 상무 아래의 직원들이 뭐 얼마나 깔끔하다고 웃기다고 비웃더라. 그치만... 그치만 저도 그런 걸요...? 엘베 버튼을 손으로 만지는 게 정말 다들 괜찮으신 건지?

엘베 버튼도 분명 인간의 손길이 닿아 더럽고 오염되어있을거라고요


이러한 복잡한 연유로다가 나는 휴대용 새니타이저(손소독제)를 쓴다. 바깥에서는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으면 되니까, 매일 챙겨 다니지는 않고 집에 와서 새니타이저를 잔뜩 짜서 핸드폰을 봑봑 닦는다. 봑봑봑. 평소에는 케이스를 끼운 채로 겉만 닦지만 어쩐지 뭔가 개운하지 않을 때에는 케이스를 빼고 타인의 숨결조차 닿지 않은 케이스 안쪽까지 다 닦는다. 알코올 성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사삭 사라질 때 약간의 쾌감도 있다. 이 쾌감이 이 짓거리에 더 심취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소품 호더로 살고 있어 내 방에는 자잘 자잘한 물건들이 잔뜩이다. 이걸 치우는 게 귀찮아서 그렇지 때로는 다 밀어버리고 모든 것을 닦아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다 치우면 다시 재배치해야 하지. 그래서 닦을 수 있는 만큼만 닦는다. 내 결벽증은 딱 이 정도 수준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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