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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아질 때, 나는 걷는다

생각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방법

by 달보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나는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았다. 사람들은 나를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라 평가하는데, 사실 그것은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다니는 수많은 생각들 때문에 오해하는 것이다. 남들은 화를 낼 법한 순간에도 나는 오히려 너무 많은 생각에 잠겨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것처럼, 내 안에서는 수많은 질문과 고민이 끝없이 떠다녔다.


어떤 말이 가장 적절할지, 어떤 행동이 올바를지 고민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기회를 놓쳐버리곤 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때로 나를 보호해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을 삼키게 만든다. 가끔은 그 순간에 터져 나왔어야 할 감정들이 묻혀 버리고 뒤늦게 후회로 남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행동이 늦어진다는 것. 그리고 행동하지 않는 생각은 종종 무거운 짐이 되어 삶을 지체시킨다는 것. 생각은 행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어야 하지만, 그 과정이 끝없는 미로가 되어버리면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 마치 준비 운동만 하다가 경기 자체를 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내가 생각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걷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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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라는 명상

나는 글이 써지지 않을 때, 풀리지 않는 고민이 머리를 가득 채울 때, 혹은 이유 없이 답답할 때 길을 나선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그저 걷는다. 신발이 땅을 딛는 느낌, 팔을 흔들며 공기를 가르는 감각, 눈앞에 펼쳐지는 익숙한 듯 새로운 거리의 풍경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다 보면 나를 옭아매던 복잡한 생각들이 희미해지고 머릿속이 한결 가벼워진다.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한 걷기가 아니라 생각을 내려놓기 위한 걷기. 이것은 마치 머릿속이 가득 찬 책장을 한 권씩 정리하는 과정과도 같다. 걷다 보면 처음에는 어지러운 생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필요 없는 것들은 밀려나고 중요한 것들만 차분하게 정리된다. 마치 파도가 몰려왔다가 잔잔하게 빠져나가듯이.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걷기가 단순한 신체 활동이 아니라 일종의 명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을 의식하고, 흔들리는 팔과 마찰되는 공기의 감각을 느끼며, 판단하지 않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는 행위. 그것이 나를 현재로 데려다 준다. 현재에 머무르는 순간, 과거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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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 얻는 것들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장면을 목격할 때도 많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오래된 벽에 새겨진 낡은 문구를 발견하기도 하고, 생각 없이 올려다본 하늘이 유난히 청명한 날도 있다. 그러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영감들이 있다. 어떤 날에는 풀리지 않던 고민이 갑자기 해결되기도 하고, 오래전 잊고 있던 기억이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글이 막힐 때면 일부러 산책을 한다. 내면에 얽힌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풀리는 경험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걷기는 단순한 운동 이상의 효과를 지닌다고 한다. 반복적인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뇌의 활동을 조율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위대한 철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이 산책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아닐까. 니체는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했고, 헤밍웨이는 매일 산책을 하며 글을 구상했다고 한다.


걷기는 나를 행동으로 이끈다. 생각이 많아질 때,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 나는 밖으로 나간다. 단순한 움직임인 그 작은 행동 하나가 생각에 잠식되지 않는 삶으로 나를 이끌어준다. 얼어붙은 강 위에 최초의 균열을 만드는 것처럼, 걷는 행위는 단단히 엉켜 있는 사고의 매듭을 서서히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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