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 없던 고기국수

day 2-1

by 달보


제주도 여행의 두 번째 날은 우리에게 숙소를 제공해준 아내의 친구와 함께 하기로 했다. 제주도에 사는 현지인답게 가이드를 자처하는 모습에서 우리 가족을 챙기려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내와 돈독한 사이인 것 같았다.


제주도는 도로에 차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출근 시간과 겹쳐서인지 어느 구간에서는 제법 막혔다. 10km 거리를 30분쯤 운전해 아내 친구 집에 도착했다. 아내 친구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훗날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넘어와 살고 있었다. 아내와는 대학교에서 만난 사이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커다란 검은색 한자가 새겨진 새빨간 천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를 맞은 건 아내 친구의 중국인 남편이었다. 비행기 고급 엔지니어로 공항에서 일한지는 오래됐다고 들었는데 아직 한국어가 서툴러 간단한 인사만 나눴다. 집 안 분위기는 한국과 중국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방문마다 붉은색 천에 커다란 한자가 적힌 현관에 있는 것과 비슷한 장식이 걸려 있었다. 거실 가장자리는 아이 장난감으로 빼곡했다. 리클라이너 소파 위에는 인형들이 사이좋게 즐비했다.


잠시 후 아내 친구가 커다란 유리잔에 '중국차'라고 하는 것을 따라줬다. 중국에선 커피보다 차를 즐긴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한 모금 삼키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온종일 커피를 달고 사는 관계로 차 마실 일은 잘 없었는데 차는 커피와는 다른 느낌의 정화를 안겨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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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지 않은 우리 가족은 식사를 마친 아내 친구 가족이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근처 유명한 고기국수집에 가서 요기를 하기로 했다. '자매국수'라는 워낙 유명한 곳이라 웨이팅이 걱정되어 일찍 갔는데도 이미 사람들과 차로 북적였다. 한눈에 봐도 돈을 크게 벌어 새 건물을 올린 티가 났다. 번호표부터 입장까지 체계적이었다.


아무래도 국수 메뉴라 그런지 회전율이 빨랐다. 슬슬 배도 고파와 고기국수와 비빔국수만으로는 부족할 듯해 물만두를 시킬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건 또 과한 것 같아 망설이던 중 메뉴판에서 ‘36개월 미만 아기에게는 아기국수 무료 제공’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고민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직원분의 실수로 우리보다 늦게 온 서너팀 정도가 먼저 들어갔었다. 번호 순서대로 입장하다 보니 그런 실수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별다른 사과 없이 얼렁뚱땅 뒤늦게 입장시키는 직원분의 태도에 살짝 기분이 상했는데, 아기국수라는 메뉴에서 가게측의 배려가 느껴져 마음이 금세 누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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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식을 30분 넘게 기다려 먹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미각이나 후각이 둔한 편이라 웬만한 음식은 다 맛있게 먹는다. 그러다 보니 맛집에 줄 서 있는 사람들 뒤에 설 바에는 차라리 그 옆에 있는 집을 들어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자매국수의 고기국수는 그런 나의 견해에 별다른 균열을 내지 못했다. 담백하고 진한 고기국수 국물에 김치와 깍두기도 괜찮았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큼 뛰어난 맛은 아니었다. 일부러 찾아갈 정도는 아니고 지나가다 웨이팅이 없으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다시 아내 친구의 집으로 가려는데 올 때보다 두 배는 많아진 인파를 보고 괜히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 정도 맛이라면 다른 고기국수집도 많을 텐데 왜 여기만 이렇게 몰릴까?’, '넘치는 정보는 오히려 사람들의 취향을 좁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아내 친구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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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보가 쓴 책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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