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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함을 동기 삼아

프롤로그

by 달보


나의 첫 책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의 앞날개에는 제주도 유채꽃밭 한가운데서 아내를 업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 실려 있다. 마땅한 프로필 사진이 없어서도, 행복한 부부 사이를 자랑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나의 모든 글에 아내의 온기가 서려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늘 아내와 함께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정작 그녀는 별생각이 없겠지만.


독서 모임에서 만난 아내는 의외로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도 잘 읽지 않았다. 생각보다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도, 생각보다 내 글을 읽지 않는 건 조금 서운했다. 읽고 피드백 좀 해주지.


"문장이 너무 길어."

"글이 불친절해."

"재밌을 만한 내용은 다 건너뛰고 불필요한 것들만 장황하게 늘여놓은 느낌이야."


언젠가 아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여러 번 나눠 들은 게 아니었다. 한날한시에 귓전으로 날아든 말들이었다. 대체 어디서 뭘 본 걸까. 순간 머리가 멍해지더니 이내 짜증이 났다. 내 글을 별로 읽지도 않으면서 뭘 안다고. 평소 돌려 말하는 법이 없는 아내였다. 없는 말을 지어낼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냥 쥐뿔도 모르면서 지적한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글쓰기 책을 읽고 있었다. 책 속엔 아내가 했던 쓴소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땐 받아들이긴커녕 못된 생각으로 쳐내기 바빴는데, 낯선 사람의 글로 접하니 그제야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내 글은 문장이 길고, 불친절하며, 쓸데없는 얘기로 넘쳐났다.


그 깨달음은 쓰라린 상처를 안겨주었지만, 나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아내가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녀의 말을 듣기 전에 글쓰기 책부터 읽었다면, 난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그랬을 거라고 확신한다.


나는 독서나 글쓰기 모임에 비해 합평하는 모임은 꺼려졌다. 왠지 오글거리고 부끄러웠다. 한때 친했던 친구들은 글을 쓰면 쓸수록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러니 내 글을 읽고 유의미한 피드백을 줄 사람은 아내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서운했다. 아내가 내 글을 읽지 않는 게. 어쩌면 읽고도 별 반응 없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아내는 갈수록 내 글을 더 안 읽는 것 같았다. 본인 이야기를 써도 별 반응이 없었다. 마치 좋아하던 예능이 점점 진부해져서 굳이 찾아보진 않게 되는 것처럼. 여전히 애정은 있지만. 새 글 알림을 힐끔 보고는 하던 일을 마저 하는 아내를 가끔 상상한다. 진작에 알림을 꺼놨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내 글 좀 읽어달라며 호소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는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할 권리가 있었다. 나 역시 아내와 함께 있기보다는 글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처럼. 물론 마음 같아선 아내 옆에 바짝 붙어 노트북을 들이밀며 내 글 좀 읽어보고 느낀 점 내놓으라며 구걸이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참는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희한하게도 그래서 아내에 대한 글이 더 쓰기 쉬워졌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까발리는 관찰일지든 뒷담화든 가리지 않고 갈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내 글을 안 읽을 거라 생각하니 전에 없던 용기가 샘솟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글에 관심을 갖지 않는 건 서글프지만, 그 덕에 해방감을 얻게 된 셈이다. 스스로 채운 족쇄로부터 드디어 풀려난 것 같달까.


그래서 결심했다. 아내 몰래 쓰지만, 들켜도 괜찮은 글들을 한 번 써보자고. 은근히 들키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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