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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Nov 07. 2022

밝은 밤, 최은영 | 역사, 그리고 여성의 삶

한국소설 '밝은 밤'을 읽고나서



책을 읽고 난 후 제목을 다시 보니 ‘밝은 밤’이란 우리 삶의 어두운 면을 비춰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마주치는 현재 나의 인생과는 동떨어진 연구원, 피난, 전쟁, 이혼 등의 단어들은 내가 속한 세계관에서는 단역에 불과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접하며 소설이지만 인간사에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어서 실제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았다.


이혼의 상처를 안고 희령이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긴 주인공이 고요한 시간을 보내면서 심적으로 회복하는 스토리가 펼쳐지겠거니 했던 나의 근거 없는 추리는 보기 좋게 빗나가고, 내가 살아보지 못하고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날 수 있게끔 해주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사회적 분위기와 시대적 상황을 텍스트를 통하여 간접경험함으로써 그 시대의 느낌을 풍부하게 접했다. 책 내용만으로 보면 정말 각박하고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나 싶은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도 있지만 그 시대가 나은지,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나은지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구분 짓기가 어려웠다.


사실 처음엔 내가 현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들, 그 상황 속 사람들의 보이는 대처나 반응들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요즘만큼 다양한 세상의 면모를 볼 수 없었던 시대여서 그런지 정말 어리석다고 여겨질 정도로 편협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이런 비극에 가까운 스토리가 아름답다는, 스스로 인정하기엔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도 달빛이 내리면 환한 대낮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성이 온 세상을 감싸듯이 이 책에 나오는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삶의 형태는 저마다의 꽃봉오리가 있었고 만개하는 시점도 달랐다.


이 책을 쓴 작가는 지연, 영옥, 새비 아주머니 등의 인물들의 인생을 써 내려가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문득 난 이런 이야기들을 창조한 작가조차도 이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 주인공들의 시대를 느껴볼 수 있었을까.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을 얼마나 쉽게 생각했을까. 내가 이 독후감을 쓰지 않았더라면 나의 어머니, 우리 할머니의 인생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가늠이나 해봤을까.


나도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한 사람의 시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기초적인 부분은 학교에서 배우며 그만큼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그런 생각은 이 책을 통해서 어렴풋이 알고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얼마나 미숙한 건지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되었다. 교과서나 소설책이나 똑같은 텍스트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토록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게 신기하다. 아니면 어릴 적에 비해 현재의 내가 그만큼 변한 것일까? 내가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역사를 돌아봄에 있어서 이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만큼의 효과는 본 적이 없다. 거창한 교육이나 말보다는 소설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는 것이 그 어떤 교과서보다, 그 어떤 말보다 더욱더 깊게 와닿을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부끄럽지만 난 일제강점기, 분단국가, 전쟁과 같은 주제를 마주할 때면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그 당시엔 어땠는진 몰라도 현대사회에 중심에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닿기엔 너무 딱딱하게 다가와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이 소설을 통해 만난 주인공들의 삶을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혜안이 생겼다는 것이다. 증조모, 증조부, 새비 부부, 영옥, 희자, 지연 등의 삶 속으로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나도 모르게 현재 나의 삶과 끊임없이 비교를 하게 되었다. 이 사람들의 삶과 나의 삶은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 아니 다르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사람들의 삶이 나의 삶보다 못하다고 할 수나 있을까? 내가 알고 있던 어머니와 할머니의 인생이 얼마나 위대한 건지 난 생각이나 해봤을까? 그리고 이 사람들의 인생을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내 인생 또한 얼마나 깊은 하나의 이야기로 남을까.


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좋다. 내 인생도 나름의 매력적인 스토리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인간의 생은 한없이 서글픈 만큼 아름다운 면도 그만큼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인생 또한 그러했다는 것을 내 이후의 세대들이 체감할 수 있게 이런 형태의 이야기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나라는 사람을 후세에 전달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일들이 얼마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지 누군가에게 전달하고픈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만큼 내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생을 접하며 한 인간의 역사가 얼마나 위대한지 깨달아 버린 것 같다. 처음엔 그저 이들의 인생이 참으로 안타깝게만 여겼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책을 쓴 작가는 이들 인생의 일부만을 창조해냈을 뿐이다. 이들이 만약 실제 인물들이었다면 이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의 일생은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부분도 많을 것이라 믿는다. 설사 본인 스스로가 본인의 인생 전체가 암울하다 느낄지라도 그 생을 평가하는 또 하나의 견해일 뿐이다. 생각 자체는 그가 되지 못한다. 어떤 생각만큼은 내 인생을 안 좋게 바라볼지라도 그 생각을 빼놓고 보면 하나의 인생이 아름답지 않고 찬란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인생은 인생 그 자체이며 그것을 어느 쪽으로든 판단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인생을 직접 살아가는 본인조차도 본인 인생의 단면밖에 보지 못한다. 사람은 본인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을 종합해서 생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살아낸 내 인생이라고 해서 내가 나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본인 스스로에 대해서 제대로 사유하기엔 너무나 정신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사연들만 계속 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들의 인생을 깎아내리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나의 머릿속에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고정관념들을 발견하면서 그만큼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결국 책을 덮을 때쯤엔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과 실제 나의 인생, 그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의 인생이 아름답고 찬란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슬프지만 찬란했던 약 100년의 시대에 걸친 책 속 등장인물들의 인생을 바라보며 내 인생도,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인생도 생각되고 여겨지는 것보다 훨씬 더 슬프고 서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아름다우며 찬란한 인생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우리 인간들은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낱 먼지에 불과한 존재다. 하지만 그런 인간의 인생이 이토록 찬란한 인생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단순히 감사하기엔 너무나도 벅찬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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