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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l 12. 2024

언제나 꾸준히 쓸 것

ep 12. 글쓴이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가 브런치북 랭킹 1위에 올라있었던 건 에피소드를 3,4편 정도 연재했을 때였습니다. 안 그래도 근래 들어 구독자 수가 좀 많이 올라가는 것 같긴 했습니다. 하지만 보통 브런치북을 발행하면 구독자 수가 평소보다는 좀 더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습니다. 더군다나 전 브런치 앱을 잘 들어가 보는 편이 아니어서 브런치북 랭킹은 더욱이나 확인할 일이 없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브런치북 랭킹에 제 글이 떠 있는 걸 보면서도 쉽게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옆에 자고 있던 아내를 당장에라도 깨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새벽 6시도 지나지 않은 때여서 꾹 참느라고 혼났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싶었습니다. 이전에 <돈을 포기하고 인생을 구하기로 했다>가 브런치북 랭킹 4위에 올랐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땐 순위권 저 밑에서부터 꾸역꾸역 4위까지 오른 반면에,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는 단번에 1위를 찍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곱씹어 볼수록 서사가 신기했습니다. 문득 신혼부터 각방을 쓰는 부부생활을 글로 쓰면 재밌겠단 생각에 신나게 썼다가, 기껏 다 써놓고 글이 재수 없어 보여서 몇 개월 동안 방치하게 되고, 그 사이 <난 어쩌다 재수없는 인간이 되었을까>를 쓰는 동안 필체가 변하고, 그 후에 마음을 가다듬고 묵혀둔 글을 다시 꺼내 퇴고를 거친 글이 브런치북 랭킹 1위를 기록했으니 말입니다. 직감을 따른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한동안 브런치북 랭킹을 점령한 글들은 죄다 이혼이나 병에 걸린 사연들밖에 없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비교적 밝은 기운을 띄는 제 글이 반응이 있을까 미심쩍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대세가 어떻든 간에 전 제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 말고는 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위권에 오른 게 더 뿌듯했습니다.


브런치 구독자가 100명쯤 되는 작가님도 대단해 보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를 쓸 때쯤엔 어느새 제 브런치 구독자는 1,000명이 훌쩍 넘어갔습니다. 다만 그것이 그렇게 좋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한편으론 떨떠름하기도 했습니다. 구독자가 많으면 물론 좋긴 하다만 그것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는 수치가 아니라는 건 이미 느낀 지 오래였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브런치북 랭킹 1위 자리는 얼마 누리지 못했습니다. 내려온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어지더라고요. 20위권 안에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실은 어느 정도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긴 했습니다. 프롤로그를 비롯한 초반 에피소드까지만 해도 제 글을 냉정하게 대하는 아내조차 호평을 했었지만, 그 이후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근데 그것과는 별개로 브런치북 랭킹이 좀 달라진 것 같긴 했었습니다. 분명 전에는 브런치북 순위 변동이 그렇게 심하진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 단위로 순위가 들쭉날쭉한 것 같았습니다. 브런치 작가님들이 늘어난 만큼 새로운 글들이 그만큼 쏟아지는 건지, 랭킹을 산정하는 시스템이 바뀐 건지는 알 길이 없지만 체감상으론 그랬습니다.


여하튼 일순간 브런치북 랭킹 1위에 올랐다고 뭔가 대단한 변화가 일어난 건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많은 글을 쓰며 느낀 바가 많다고 한들, 필력이 순식간에 오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평소 아니면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던 아내가 제 글을 좋게 봐줬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으니 그에 만족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주제에 비해 욕심만 많은 저였기에 욕심부릴 때를 알아차리고 통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취하고 자만하지 않는 게 중요했습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제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경사가 일어나든,

참사가 일어나든,

언제나 꾸준히 글을 쓰는 것.


그것만이 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인생의 과업이자 의무였습니다.




[에세이 출간 안내]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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