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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Oct 27. 2024

아무리 봐도 수상한 우리 팀장님

ep 17. 팀장님의 일거수일투족이 연구 대상


팀장님이 현장조사를 다닐 때는 일만 좀 답답하게 시키는 상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현장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서 주로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다 보니 보면 볼수록 수상한(?) 점이 많은 분이었다. 팀장님은 사무실을 숙소로도 쓰고 있었기에 업무 외적으로도 볼 만한 게 많았다. 빨래하는 모습이나 화장실 청결 상태 그리고 뭘 먹는지와 분리수거 습관 같은 것들.


우선 팀장님을 보면 가장 갸우뚱하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빨래였다. 팀장님은 빨래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한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면 편한 옷을 입고 있어서 갈아입어봤자 저녁에 씻고 나서 자기 전에 한 번뿐일 텐데 빨래하는 빈도수가 아내와 내가 함께 사는 우리 집보다 더 많았다. 빨래야 뭐 사람에 따라서 매일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근데 이상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진짜 이상한 점은 하루에 한 번씩 빨래하는 게 아니라, 매일 빨래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세탁물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팀장님은 세탁기에서 빨랫감을 다 빼고 나면 거실 바닥에 널브러뜨린다. 그리고 옷걸이에 하나하나 걸고 빨래집게까지 야무지게 집은 다음 옷걸이 채로 한꺼번에 들고 가서 건조대에 말린다. 처음엔 팀장님이 빨래를 하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한날 팀장님이 마침 다 된 빨래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을 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치다가 믿기 힘든 장면을 목격한 뒤로부터는 팀장님이 빨래할 때면 종종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팀장님은 한 번 빨래할 때마다 빨래망을 10개 가까이 쓰는 듯했다. 빨래망이 그 정도면 안에 든 것들은 곱절 이상의 가짓수라는 걸 뜻했다.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사람이 어찌 그리 많은 옷을 빠는 걸까. 내 기준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팀장님이 날마다 빨래하는 양은 아내와 함께 사는 우리 집 이틀 분량의 빨래와 맞먹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고.


빨래의 양은 시작에 불과했다. 팀장님은 티 한 장, 속옷 한 장을 건조대에 그냥 너는 법이 없었다. 상의든 하의든 속옷이든 간에 무조건 옷걸이 하나에 빨래집게는 필수였다. 베란다에 있는 건조대는 공간이 충분해서 모든 걸 옷걸이에 걸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팀장님에게 건조대란 그저 옷걸이를 거는 막대기에 불과했다. 특히 빨래집게는 광적인 수준으로 집착했다. 사무실 베란다는 태풍이 들이닥쳐도 건조대에서 빨래가 떨어질 일은 없는 구조였다. 그럼에도 팀장님은 옷걸이마다 빨래집게를 네 개씩 집었다. 가끔 건조대에 널린 빨래들을 보면 옷가지들이 빨래집게로 고문이라도 당하는 것만 같았다. 그에 한 술 더 떠서 팀장님은 빨래집게가 자꾸만 사라진다며 더 많이 사놔야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빨래집게에 발이라도 달린 걸까.




빨래하는 것만 봤을 땐 팀장님이 깔끔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사람마다 깔끔 떠는 영역은 정해져 있기라도 한 건지 팀장님 주변은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게 더 많았다. 팀장님이 쓰는 책상부터가 그랬다. 우리 회사는 업무 특성상 참고할 문서가 많은 편이다.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평소 팀장님 책상은 문서 더미로 인해 어지럽기 짝이 없다. 거기엔 팀장님이 원래부터 정신없게 일하는 스타일인 것도 한 몫하겠으나, 것보단 팀장님의 소심한 면이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팀장님은 사소한 메모라도 적힌 것은 그게 뭐든지 간에 당최 버리질 않기 때문이다. 언제 한 번은 버려도 되는 서류들은 좀 버리면 안 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에 돌아오는 대답은 "안 된다."였으며 항상 뒤이어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혹시 모르니까."


약간의 업데이트 이슈라도 있으면 팀장님은 복사를 빼먹지 않았다. 일일이 한 장 한 장 스캔을 떠서 복사본을 만들기 일쑤였다. 예컨대 '1~10'이라는 프로젝트에서 중간에 '3'이 수정되면 '3'만 복사하는 게 아니라 '1~10' 전체를 새로 복사해서 '1~10(3 업데이트)'라는 복사본을 만드는 식이었다. 가뜩이나 기본적인 문서의 양도 엄청난데 그만큼의 복사본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더 이상 필요 없는 문서까지 그놈의 '혹시 몰라서'를 남발하며 단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질 않았으니, 책상은 물론이고 사무실 전체가 지저분해지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날이 갈수록 사무실은 서류 뭉치가 새끼 치듯 불어만 갔다. 업무용 책상은 말할 것도 없었고 소파와 탁자 위 심지어 땅바닥에까지 서류들이 쌓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간단한 업무를 볼 때도 문서 원본을 뒤적이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난 팀장님의 그런 무식한 방식을 있는 그대로 답습하긴 싫어서 나를 스쳐가는 종이 문서들은 사진을 찍은 다음 컴퓨터에 이미지 파일로 저장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렇게 관리하니까 팀장님처럼 하루종일 문서 찾느라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게 되었다.


팀장님은 그런 날 보며 처음엔 '뭣하러 사진까지 찍냐'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다 나중에는 본인도 문서를 뒤적거리는 게 엄두가 나지 않던지 "혹시 사진 찍어놓은 거 없냐."라는 말을 스리슬쩍 건네기 시작했다. 근데 그게 또 익숙해지니까 언제 한 번은 "너 왜 사진 안 찍어놓냐?"라며 나무란 적이 있었다. 애초에 종이 문서를 컴퓨터에 이미지 파일로 저장하기로 한 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문서를 겹겹이 쌓아놓는 팀장님에게 말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팀장님처럼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서였다. 그러니 내가 이직하기 전의 문서들은 당연히 사진을 찍어놓은 게 없었다. 또한 팀장님이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업무의 효율성을 도모하고자 자체적으로 진행한 일이기에 팀장님은 내게 그런 잔소리를 할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팀장님은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사진 왜 안 찍어놨냐며 쓴소리 할 때마다 그냥 조용히 넘어갔다. 억울한 감이 없잖아 있긴 했으나 내 멘탈을 지키기 위해선 그게 그나마 가장 나은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한때는 내 책상에 펜꽂이함이 있었다. 내가 쓰던 건 아니었다. 나 이전에 일하던 사람이 쓰던 거였다. 희한하게 팀장님은 본인 책상에 너저분하게 흩어진 펜을 쓸 생각은 않고 자꾸만 내 책상에 있는 펜꽂이함에 꽂힌 펜을 하나둘씩 꺼내 썼다. 어차피 난 컴퓨터로만 작업해서 펜 쓸 일은 없었다. 그래서 팀장님이 펜을 가져가든 말든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문제는 펜꽂이함에 가득 꽂혀 있던 펜이 동 나니까 팀장님은 날더러 펜 좀 꽂아놓으라며 잔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팀장님은 펜을 쓸 때 두 가지 버릇이 있었다. 하나는 한 번 쓴 펜을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한 번 쓴 펜은 펜촉을 넣지 않는 것(펜뚜껑도 닫지 않는다). 그러니 펜은 항상 모자랄 수밖에. 팀장님의 펜 좀 꽂으라는 잔소리를 들었을 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냥 침묵으로 대응했다. 대신 그날 이후 출근 하자마자 내 책상에 있는 펜꽂이함을 팀장님 책상으로 치워버렸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들어온 펜꽂이함은 텅텅 비어 있었다. 펜을 버리기라도 하는 걸까.




팀장님은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하는 편이다. 팀장님은 우유를 자주 드시는데 다 먹은 우유갑은 물로 헹궈서 물기까지 다 말린 다음에 고이 접어서 버린다. 나머지 재활용품들도 마찬가지다. 깨끗하게 씻어서 뽀송(?)한 상태로 버린다. 그래서 처음엔 팀장님이 환경을 엄청 생각하시는 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분리수거는 그렇게 깔끔하게 하면서 종이 쓸 때는 또 달랐다. 안 그래도 팀장님은 일을 부풀리거나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쓸데없이 인쇄하는 일이 많았다. 팀장님이 출력하라는 것들 중에 어림 잡아 30~40%는 쓰지도 못하고 다 버리기 일쑤였다. 가뜩이나 그런데 팀장님은 이면지를 전혀 활용하지 않았다.


팀장님은 현장 도면을 체크할 때 모니터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육안으로 훑어보는 걸 선호한다(근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 게 도면뿐만 아니라 문자를 읽을 때도 모니터 화면보다는 종이에 인쇄된 글씨를 눈으로 직접 보는 게 훨씬 더 잘 보인다). 다만 도면 출력은 주로 내게 부탁을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난 웬만하면 이면지를 쓰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려고 평소에 모아둔 이면지도 많았고 잠깐 훑어보고 말 거라면 굳이 아깝게 새 종이를 쓸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팀장님이 출력을 부탁해서 프린터기 용지함을 열어 이면지를 채우고자 자리에서 일어나면 팀장님은 날 멈춰 세운다.


"왜왜. 어디 가게?"


"이면지로 바꾸려고요."


"아 됐어. 그냥 빨리 뽑아."


혹시 종이를 만드는 나무와 무슨 원수라도 진 걸까. 분리수거 잘하고 불도 잘 끄고 다니면서 종이 아낄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게 희한할 따름이다.


팀장님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분리수거를 깨끗하게 하고 불을 잘 끄고 전기코드 일일이 뽑는 게 진정 환경을 생각해서인 것도 있겠지만, 예로부터 몸에 밴 습관에 의한 영향이 그보단 압도적으로 클 거라고 말이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저 버릇일 뿐이라고. 그게 아니라면 다른 데에서는 환경을 생각한다면서 인쇄용지를 휴지 쓰듯 쓰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인간은 진정으로 환경을 위할 수 있는 존재인 걸까. 단지 본인 마음 편하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들에 뭔가를 위한답시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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