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현실에 눈감은 로맨티스트의 어린 시절
몇 달 동안 집에 피아노가 두 대 존재했던 시간이 있었다.
중학교에 갓 들어간 초봄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1965년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새카맣게 윤이 나는 호프만 피아노 옆에 상앗빛 색이 고급스럽게 빛나는 피아노가 나란히 방에 놓여 있었다. 정말 아름답고 품위 있는 피아노였다! 두 대의 피아노는 마치 협주곡이라도 연주하는 것처럼 작은방에 일렬로 놓였다. 1970년은 서울의 중산층이라 해도 피아노 구경하기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두 대씩이나!
하지만 그토록 아름다웠던 두 번째 피아노는 나에게 있어서 낯선 가난의 입성기념물이었다. 피아노가 세간을 밀치고 작은 방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나의 곁을 평생 떠나지 않은 가난이 나의 생 속에 침입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급작스런 파산으로 을지로에 있던 아버지 회사 녹음스튜디오를 정리하면서 겨우 건져왔을 거라고 눈치껏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책을 읽다가도 내가 피아노 앞에 앉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자리를 빼앗던 언니도 두 대의 피아노를 침울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 대의 피아노의 뚜껑을 열면 일렬로 늘어선 희고 검은건반이 멀고 먼 길처럼 아득하게 길어 보였다. 이제는 싸울 필요가 없게 되었는데도 언니와 나 그 누구도 피아노에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집안을 감돌던 우울한 어떤 기운이 집에서 노래를, 음악을, 웃음소리를 야금야금 빼앗아가고 있었다. 몇 달 되지 않아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두 대의 피아노가 동시에 사라졌다. 그렇게 나의 행복한 유년은 끝났다. 그것의 기억은 너무도 생생해서 늘 현재형이었다.
나는 나의 손때가 묻은, 검고 윤이 나는 피아노가 어디론가 실려 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높은 시 음의 건반은 누르면 다시 튀어나오지 않으므로 재빨리 다시 올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채 그들은 피아노를 트럭 위로 싣는다. 한 사내가 피아노 뚜껑을 열고 뭉툭한 손가락으로 와르르 건반을 누른다. 나는 마치 내 몸에 손이 닿은 것처럼 놀란다.
먼 훗날 울프 호프만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들을 때 밧줄에 매인 피아노를 떠올린다. 그래서 그 기억을 썼다.
이 밤 바흐의 평균율을 듣고 있어서 다행이다. 1997년에 울프 호프만이 발표한 엘리제... 를 먼저 들었더라면 문도 생각에, 두 대의 피아노 생각에, 아버지 생각에, 어린 시절 호프만 피아노 생각에, 아니 1997년의 내 생각에 펑펑 울었을지도 모르는데.
https://youtu.be/v8QtrY3iIg0?si=1a65uLKZ-vPgxaK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