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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영철버거 만들기

고려대 앞 추억의 가게

by 하늘나루

며칠 전 고려대 앞 영철버거 사장님이 별세하셨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영철버거를 먹어 본 적이 없다. 아직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3년에 입학한 데다가, 영철버거가 자리한 이공계 지역은 문과대생인 내가 접근하기에는 조금 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소식을 듣고 한 번이라도 맛보고 싶었다. 그래서 재료를 구해다 한 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재료는 불고기 고기, 배추, 빵과 케첩, 그리고 머스터드로 간단하다. 영철버거 사장님은 여기에 음료도 무한 리필해 주셨다고 하는데, 왜 적자가 났는지 알 것 같았다. 물가가 오르는데도 가격을 1000원으로 고정해서 (경제학적으로 보면) 생산자 잉여를 거의 남기지 못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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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지저분한 이유는 적당한 빵을 못 구했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납품을 받으셨겠지만, 동네 빵집을 뒤져보아도 버거에 쓸 만한 담백한 빵을 파는 가게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크림빵에서 크림을 빼서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빵이 엉망이 된 것이다. 하지만 영철버거를 만들 정도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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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불고기다. 고기에 불고기 소스를 넣고, 미리 잘라 둔 양배추를 넣어 볶았다. 이 시점에서 영철버거가 필연적으로 적자가 났음을 알 수 있다. 불고기는 비싼 재료라 아무리 단가를 낮추어도 7000원 이하로 내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햄이나 소시지도 아니고 불고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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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되었다. 정황상 사장님은 미국의 필라델피아 치즈스테이크에 영향을 받으신 것 같다. 필라델피아 치즈스테이크도 얇게 자른 고기에 소스를 얹어 핫도그 빵에 끼워 파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영철버거도 버거가 아니고, 치즈스테이크도 스테이크가 아니다. 사실 둘 다 핫도그인데, 재미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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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다 볶았다면 미리 준비해 둔 빵에 얹으면 된다. 햄버거 모양의 빵이라면 이렇게 반반씩 덮고, 핫도그 형태라면 가운데에 잘 끼워 넣으면 된다. 사장님의 핫도그처럼 푸짐하게 넣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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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얹은 뒤에는 케첩과 머스터드를 뿌린다. 이 조합, 꼭 동양과 서양의 만남 같기도 하다. 진짜 불고기를 패티로 쓰는 "찐" 불고기 버거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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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빵으로 덮으면 완성이다. '과연 맛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한 입 베어무니 그런 걱정은 싹 사라졌다. 정말 맛있었다. 전통적인 불고기와 머스터드, 케첩이 안 어울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빵 속에서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었다. 필자가 미숙하게 재현한 것이 이 정도니 매장에서 제대로 만든 영철버거는 더 맛있었음이 틀림없다. 학생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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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 돌아가신 다음 날 필자도 영철버거 매장을 찾았다. 사장님은 한 번 폐업했다가 학생들의 지원으로 다시 일어섰는데, 재정 때문인지 좀 더 평범한 술집 느낌으로 다시 개업한 상태였다. 예전처럼 싼 가격으로 즐거움을 주진 못하시겠지만 안정적으로, 오래 장사하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코로나가 잦아들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레시피라도 살아남아 후대에 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버려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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