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는 숨겨도 칼국수
어느 추운 겨울, 한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이름은 '칼국수&돈가스 집'
참 정직한 이름이다. 하지만 메뉴는 의외로 다양하다. 메밀소바, 제육덮밥, 떡볶이까지.
오늘은 어쩐지 떡볶이가 먹고 싶은걸, 생각하며 떡볶이를 주문했다.
앗, 이럴 수가.
떡볶이에 칼국수 면이 들어 있었다. 먹어보니 분명 떡볶이지만 칼국수의 감칠맛이 났다. 떡과 참깨 사이에서 바지락의 향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어디 다른 음식을 시켜볼까나.
'제육볶음 덮밥'
쌀밥 사이로 양념에 절인 칼국수가 섞여 있다. 분명 고기지만, 양념된 고기지만 칼국수 집 출신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는 듯이. 한 입 떠먹으니 짭조름한 칼국수의 향이 매콤한 양념 사이에 숨어 있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아름다움도 역시 칼국수 아닐까. 겉을 꾸미기는 쉽다. 떡볶이로 숨거나
제육볶음으로 변장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니까.
하지만 칼국수 그 본연의 맛은 아무리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다. 고추 양념으로 지지고 철판에 한참 볶아도 그 특유의 감칠맛은 여전하니까 말이다. 속이 아름다운 사람은 아무리 양념과 재료가 변해도 여전히 아름답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저기요, 혹시 오늘 시간 되세요?'
난 칼국수에게 말을 걸었다.
'손님,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직원이 나무랐다.
'저 형 좀 봐. 이상한 사람인가 봐'
휴대폰 게임에 열중하던 초등학생 무리가 말했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고 칼국수의 손을 잡았다. 아, 물론 나도 알고 있다. 그건 음식일 뿐이다. 하지만 또 칼국수를 만난다면 기꺼이 내 손을 내어 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