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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Jun 07. 2022

그 시절의 나도 지금의 나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하늘을 좋아한다. 특히   다음  하늘을 무척 좋아하는데 선명한 파란색과 동화 같은 구름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좋다. 그저 하늘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어릴 적엔 비오기  잔뜩 먹구름이  스산한 날씨를 좋아했다. 싸늘한 바람과 구름에 가려 채도가 낮아진 도시의 풍경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날이면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종로에 간다. 딱히 목적이 있어서 가는  아니고 그냥 그렇게 사람 많은 곳에 가서  풍경을 바라보는  좋았다. 돈이 조금 있으면 자주 가는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거나 햄버거 가게 가서 햄버거 세트를 시켜 먹었는데  소소한 기쁨을  좋아했다.


그렇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 가는 곳이 두 군데 있었다. 뮤직랜드와 낙원상가. 90년대 종로 파고다 공원(지금은 탑골공원) 건너편 빌딩 지하에 뮤직랜드라는 곳이 있었는데 정말 별천지 같은 곳이었다. 벽에 진열된 수많은 테이프와 CD들, 청음을 할 수 있는 헤드폰 그리고 천장 곳곳에 설치된 CRT 브라운관. 화면에서는 쉴 새 없이 해외 밴드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당시 헤비메탈을 좋아했던 나는 새로 나온 음반이 없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전설적인 밴드들의 음반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때 당시 뮤직랜드는 정말 핫한 곳이었다. 그리고 뮤직랜드를 나와 바로 옆 종로 2가 사거리에 가면 다이나톤 매장이 있었는데 전시된 다양한 키보드를 연주해볼 수 있어 거기도 참 자주 갔더랬다.


그리고 가는 곳이 낙원상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정말 낙원 같은 곳이다. 듣기로는 전 세계에서 이렇게 악기와 장비를 파는 곳은 이곳이 유일무이하단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던 나는 낙원상가에 가도 가끔 드럼 스틱이나 사지 비싼 일렉기타는 엄두도 못 냈다. 늘 아이쇼핑을 하며 '이런저런 악기들이 있구나. 이건 얼마, 저건 얼마 하네. 나중에 꼭 사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장밋빛일 것만 같은 미래를 막연히 기대하며 행복해했었다. 정말 말 그대로 행복했다. 비록 돈은 없어서 구경만 해야 했지만 그래도 서울에 사니 그런 곳도 가볼 수 있고 실컷 구경이라도 할 수 있으니 그것만 해도 행운이다 싶었다.


그렇게 음반과 악기를 보며 행복해했던 10대의 내가 있었기에 아직까지 음악의 끈을 놓지 않고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면 스산한 날씨가 그 시절의 내게 영향을 많이 미쳤던 것 같다. 화창한 날씨에 종로에 가는 것도 물론 좋아했다. 그런데 스산한 날의 느낌은 이런저런 상상을 더 하게 만들었고 왠지 나도 언젠가는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그 시절. 지금이야 그게 너무너무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만약 다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또 그렇게 스산한 날씨에 종로를 가고 그렇게 꿈을 꾸며 살 것 같다. 심지어 미래의 결과를 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인생을 더 살아 보니 그 시절에만 느꼈던 감정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보이는 물건이야 어떻게든 살 수 있겠지만 그 시절 행복했던 순간을 어떻게 다시 살 수 있을까. 그 시절이 소중했던 것처럼 나의 오늘도 행복한 순간순간이 있지 않았나 돌아본다. 가족과 함께 하는 순간, 이렇게 새벽에 글을 쓰는 순간, 이제는 좋아하고 필요한 건 좀 무리를 해서라도 살 수 있는 환경, 아직 이렇게 지난날을 추억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마음. 이제는 스산한 날씨보다 화창한 날씨를 좋아한다. 달리는 차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네 식구가 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화음도 넣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한적한 카페에서 좋아하는 커피와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언젠가는 다시 살 수 없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제 곧 50대가 될 나의 40대를 이렇게 기록한다. 지금을 잘 기억하라고. 그리고 내일을 잘 맞이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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