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

by 원석


산책하기 좋은 날이 왔다. 아직 8월이지만 열대야가 끝난 뒤로 아침저녁으로 꽤 선선한 바람이 분다. 덕분에 토리 산책이 조금 편해졌다. 아침 산책보다 저녁 산책을 좋아한다. 밝고 싱그러운 아침 공기도 좋지만 차분하고 조용한 저녁 공기가 더 좋다. 아내가 아프기 전에는 늘 함께 산책을 했다. 토리 산책도 같이 하고 때로 둘이서 산책을 하고. 그럴 때면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걷는 게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얘기를 쏟아내듯 하고 오면 답답했던 마음도 조금 풀리고 걱정했던 일들도 편하게 내려놓게 됐다. 그런데 지금은 아픈 아내가 산책을 못하기에 혼자서 산책을 한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나만을 위한 산책은 아니고 토리 산책을 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가는 산책이다. 아내와 함께 했던 산책이 많이 생각난다. 낄낄거리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했던 그 저녁 시간들. 앞으로 언제 할지 모를 산책이기에 더 그리운 마음이다.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아내는 매일매일이 고난이다. 암 수술로 인한 후유증이 항암 치료 후유증보다 큰 건 겪어본 사람만 아는 것이리라. 아내만이 아는 고통, 슬픔, 좌절을 다 알지 못하기에 늘 미안하다. 예전의 일상은 늘 인고의 시간이었지만 다시 그 일상으로 돌아가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몸이 회복되고 마음이 회복되어야 하는 언젠가. 그 시간. 그때를 그저 기다려본다. 그때가 되면 다시 저녁 산책을 해야지. 봄이면 따뜻함을 느끼며 걷고, 여름이면 만물이 생동하는 것을 느끼며 걷고, 가을이면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걷고, 겨울이면 시립디 시린 찬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걷는 산책을 해야겠다. 그러기 위해 오늘을 살아야지. 그리고 내일을 덤덤히 맞아야지. 그래야 그날이 올 수 있겠지.


로또를 만 원어치 샀는데 5천 원짜리 하나 맞았다. 다시 일주일을 기다리며 1등이 될 순간을 꿈꿔야겠다. 코로나19로, 여러 이유로 사업이 쉽지 않게 됐다. 목돈이 필요한데 나올 곳이 없으니 자연스레 로또에 눈길이 간다. 번개 맞을 확률보다 적은 로또가 내게 올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사지 않으면 그나마 있는 번개 맞을 확률도 없게 되니 먼지만 한 희망을 가지고 사게 된다. 산책이나 로또나 지금은 둘 다 내겐 희망이다. 다시 아내와 함께 산책할 날을 기다리고 로또 1등 할 날을 기다리는 희망이다. 둘 중 뭐든 빨리 이루어지면 좋겠다. 아니 둘 다 빨리 이루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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