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석 Sep 12. 2021

오! 참치찌개

투병 중인 아내에게 바치는 점심 한 끼


아내는 현재 투병 중이다. 암이라는 것이 그 부분만 치료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치료를 시작해보니 후유증이 참 많다. 아내의 병명은 자궁내막암이다. 그것도 3기 말. 수술은 잘 됐다. 6시간을 꽉 채우는 수술이었지만 그래도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수술은 자궁 안쪽에서 암이 시작되어 주변까지 전이된 바람에 자궁, 난소, 나팔관을 드러냈고 복막 일부와 임파선(림프절) 일부까지 제거했다. 그 영향으로 수술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각종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자궁을 드러내며 방광 신경을 건드려 방광에 안 좋은 영향이 있고 신장에서 방광으로 연결된 요관에 문제가 있어 스텐트를 넣는 시술을 했으며 임파선을 제거해 다리 저림과 부종이 있다. 현재 항암 5차까지 받았는데 이 항암약이 새로운 단백질 세포란 세포는 다 죽이는 탓에 머리카락을 만드는 세포도 죽여 탈모는 예 저녁에 진행됐다. 약이 참 독하다. 손발톱도 변색이 시작되고 몸은 붓고 저린다. 특히 저림이 심해 걸을 땐 발이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나고 뭔가를 손으로 잡을 땐 잡은 느낌이 덜 난다고 한다. 약은 사람을 낫게도 하지만 아프게도 한다. 그래도 치료가 우선이기에 부작용을 알고도 참고 견뎌내고 있다. 항암 4차부터는 입맛도 변했다.




그런 아내에게 오전에 점심 뭐 먹고 싶냐고 물으니 참치찌개가 먹고 싶단다. 아내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김치찌개도 참치가 들어간 참치찌개를 좋아한다. 예전에 몇 번 만들어 본 적은 있는데 사실 참치찌개 맛을 잘 내는 게 쉽지 않아 실패했던 기억들이 있다. 그래서 오늘 그 이야기를 듣고 할까 말까 망설였다. 그런데 입맛 없다고 하는 아내가 먹고 싶다고 하니 결국 해야겠다 싶어 레시피를 찾았다. 늘 요리할 때 참고하는 만개의 레시피. 오늘도 역시 그곳에서 백종원 스타일 참치찌개를 찾았다. 각종 재료를 확인하고 조리법을 눈에 익히고 준비에 들어갔다. 백종원 레시피가 아니랄까 봐 김치에 설탕 두 스푼을 넣고 버무린 후 10분간 숙성하라고 한다. 그런데 아내가 설탕 들어간 찌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 알기에 두 스푼은 많다고 생각해 나름 한 스푼 반 정도만 넣었다. 그리고 김치를 참기름에 볶다가 물을 붓고 국간장과 이것저것 넣고 마지막에 참치와 두부를 넣어 마무리했다. 맛을 보니 감칠맛도 꽤 나고 이제까지 만든 참치찌개 중에서 가장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점심상을 차렸다. 입맛 없는 아내가 맛있게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내심 기대를 했다. 아내가 한 술 뜨더니 "내 입맛이 이상한가? 왜 달지?"라고 했다. 아뿔싸! 설탕을 넣지 말걸! 후회가 밀려왔다. 그럭저럭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지없다. 설탕이 들어간 찌개를 싫어하는 아내는 그 맛이 유독 강하게 느껴졌나 보다. 그리고 나는 입맛이 이상해서 단 게 아니라 설탕을 조금 넣어서 그렇다고 말을 했다. 먹는 내내 후회의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섞여 편하게 먹지를 못 했다. 입맛 없는 아내에게 그럴싸한 밥 한 끼 차려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는데, 밥은 목구멍으로 넘어갔지만 마음은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를 않았다.



투병 중인 환자에게 식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특히 암투병 중인 환자는 영양을 생각해서 식단을 짜야한다. 그게 치료에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우선인 것은 맛있게 잘 먹는 것이다. 잘 먹어야 소화도 잘 되고 스트레스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아침은 간단하게 먹어 식사를 차리는 것은 하루 두 끼다. 그것도 사 오는 음식이 있을 때는 한 끼 일 때도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한 끼 식사를 차리는 것이 내겐 그 어떤 일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다. 늘 하는 얘기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와 아내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한 끼만 안 먹어도 배고픔을 느낀다. 하루 세끼 식사 준비에 각종 집안일을 하는 엄마와 아내는 사실 어떤 위대한 일보다 위대하고 위대한 일을 했던 위인보다 위대하다. 인류가 지금까지 이렇게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 끼 식사부터 시작했다고 하면 너무 비약일까. 그래도 난 그렇게 말하고 싶다.


오늘 김치찌개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아들 둘과 나는 만족했고 가장 만족했어야 할 아내는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탕 한 스푼 반. 요리는 알면 알수록 어렵지만 이번에 다시 한번 배웠다. 결정적인 맛을 내는 양념은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한다고. 실패해서 낙심됐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도전해야겠다. 설탕이 안 들어간 진한 국물 맛의 참치찌개를 먹고 감탄한 아내를 보기를. 그래서 그날은 보람을 느끼기를.


#김치찌개 #참치찌개 #찌개 #항암치료 #항암투병 #점심식사 #레시피


작가의 이전글 보이지 않아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