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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Dec 12. 2018

변덕쟁이의 소울 푸드

계절 음식이 주는 위안

e사진 출처: Food & Wine Magazine



코끝에 닿는 공기가 알싸하다. 이맘때는 아무래도 따끈한 음식을 찾게 마련이어서 무친 음식보다는 찌개국물을 한 술 뜨고 싶고, 고기라면 구이보다는 뭉근하게 끓인 쪽이 더 입맛 당긴다. 그럴 때 생각나는 고기 요리 몇 가지가 있다. 한국 사람이니 으레 육개장이나 갈비탕 같은 걸 떠올리는 게 마땅하겠지만, 나의 경우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한식 재료가 귀한 곳에서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입맛도 변하는 모양. 한국 음식을 전혀 안 먹고야 살 순 없어도 한정된 재료로 메뉴를 짜다보면 음식의 국적도 대륙과 해양을 넘나들게 마련이니까.


<유성의 인연>이라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어보면 ‘하야시라이스’라는 요리가 등장한다. 소설의 서사를 이끌고 나가는 중심 사건이 비장의 하야시라이스 요리법이 적힌 노트를 소유한 식당 주인의 죽음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자세히 다룰 수밖에 없는 음식이다.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음식에 관한 내용을 쓸 때는 독자로 하여금 ‘먹고 싶어지게’ 묘사하는데 중점을 둔다고 하는 걸 읽은 적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히가시노 게이고도 <유성의 인연>에 하야시라이스의 풍미를 담아내는데 성공한 거다. 바짝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른 다음, 양파를 볶는 것으로 시작되는 조리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지면서 상상 속의 냄새에 침이 고일 정도니. 음식을 소재로 한 스토리에 관해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본의 창작물답다.


처음엔 하야시라이스가 뭔지 감이 안 잡혔었는데 알고 보니 한국에서는 하이라이스라고 불리는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90년대만 해도 한국에는 경양식집이라는 종류의 식당들이 꽤 있어서, 돈가스니 함박스택이니 하는 것들을 팔았었다. 하이라이스 역시 오므라이스와 함께 경양식집의 주요 단골메뉴 아니었던가.


책을 읽어보니 서양 음식을 동양 사람의 입맛에 맞게 변형해 만들어 파는 경양식집은 일본이 원조였던가 보다. 한때 궁색한 돈으로 폼 잡으며 먹었던 경양식집의 싸구려 메뉴가 일본에서는 식당들 간의 승부를 가늠하는 미각의 요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하이라이스나 카레라이스처럼 따끈한 밥 위에 얹어 먹는 소스 요리도 그렇고, 명절 때 빠지면 섭섭한 갈비찜도 그렇고, 모두 고기를 베이스로 끓여내는 것들로 날씨가 쌀쌀해지면 먹고 싶어진다. 다진 고기를 볶다가 칠리 가루와 큐민 가루로 향을 내고 양파, 토마토, 콩을 더해 천천히 끓여내는 칠리도 좋다.


처음 미국에 와서 다녔던 ESL 수업의 한 선생님은, 칠리는 칠리로 불러야 하며 절대로 ‘칠리 수프’라 하면 안 된다고 학생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줬다. 더운 날씨 탓에 고기를 오래 보관할 수 없었던 서부 개척 시대의 사람들이 개발한 요리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흔치 않은 ‘원조 미국 음식’이었기에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던 선생님의 태도가 기억에 남아 칠리를 만들 때마다 웃음 짓게 된다. 난 칠리를 무척 좋아해서 가끔 만들기도 하지만 미국 사람들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맛있는 칠리를 먹게 되면 꼭 요리법을 묻는다. 입수한 비법 중 하나를 공개하자면, 고기를 볶을 때 코코아 파우더를 넣어주는 것이다. 내가 먹어 본 중 가장 훌륭했던 칠리를 만든 사람의 노하우이자 깊은 맛을 내는 비밀이라고 한다.


프랑스인들 역시 찬바람이 불면 고기를 푹 고아내 먹기를 좋아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그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Le Boeuf Bourguinon. 굳이 한국말로 발음하자면 ‘르 뵈흐 부흐기뇽’ 쯤이 되겠지만, 편의상 미국식으로 비프 부르기뇽이라 하자. 비프 부르기뇽을 만들 때는 누가 프랑스 요리 아니랄까봐 레드와인을 아낌없이 팍팍 넣고 고기를 끓여 익히는데, 여기에 오레가노나 로즈마리 같은 허브들을 흐트러지지 않게 잘 묶어서 함께 넣어주었다가 국물과 고기에 향이 배면 건져낸다. 고기가 연해질 정도로 푹 익었을 때 적당히 썰은 당근, 감자를 넣고 간을 한 다음 야채가 익으면 다 된 것이다. 아마 디테일이 더 있겠지만 굵직하게 요약하자면 그렇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두 요리사가 나와 각자 조금씩 다른 자기식의 방법대로 비프 부르기뇽 만드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고기는 어떤 부위를 쓸 것인지, 와인은 어떤 종류를 쓰는지, 야채는 어떤 모양으로 썰어 어떤 시점에 빠뜨리는지를 갑론을박하는 식이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는 먹어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내 기억 속에는 강한 인상을 새겨놓은 비프 부르기뇽의 맛 한 가지가 있다.


이십대 시절, 유학생으로 파리에 살 때 어떤 일본인 아저씨 집에 저녁초대를 받아 간 일이 있었다. 딱히 내가 손님으로 지목받은 것은 아니고,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친구 하나가 나와 또 다른 친구 하나를 달고 간 것이었다. 다른 친구 하나는 대만인이었다.


우리를 초대한 아저씨는 일본인 친구의 아버지와 친한 분이었는데, 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평생을 일하다가 어느 날 홀로 파리로 와 일 년을 계획해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퇴직을 했다고 했는지 장기휴가를 받았다고 했는지, 그것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 아저씨가 말하길, 혼자서 몇 달간을 지냈더니 적적하다며 친구들을 두엇쯤 데리고 놀러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일본인 친구가 그곳에 가자는 제안을 했을 때, 솔직히 별로 재미있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그러나 저녁 한 끼 해결할 건수가 나쁘지는 않아 대만인 친구와 나는 흔쾌히 따라나섰다.


아저씨가 사는 아파트는 낡은 건물의 꼭대기 층, 그것도 지붕 밑 공간이었다. 삐걱거리는 나선형 계단을 굽이굽이 올라 오층에 다다랐을 땐 우리 셋 모두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벨을 누르자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초로의 사내가 나와 우리를 맞았다.


안으로 들어가 훑어보니 한눈에 봐도 그 아저씨가 파리에서 한 일이라고는 그림을 그린 것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파리의 풍경 곳곳을 담은 캔버스와 화구들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그나마 손님이 온다고 대충 치워놓은 좁은 거실 가운데에 덩그마니 놓인 원형테이블, 서로 짝이 안 맞는 의자 몇 개가 눈에 보이는 가구의 전부였다.


아버지뻘의 연령대인, 그것도 초면의 어른과 함께하는 자리가 편안하지는 않았다. 불어에 익숙했던 우리와 영어로 말해야 했던 그 아저씨와의 언어적 한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대만인 친구와 나는 적당한 추임새로 맞장구나 치고 사실 주된 대화는 일본인 친구와 아저씨 사이에서 오갈 수밖에 없었다.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저씨는 저녁을 가져오겠다며 일어섰다. 아저씨는 주방이 좁아 도울 것도 없다며, 접시라도 나르려고 주춤주춤 몸을 일으키는 우리를 손짓으로 주저앉혔다. 잠시 후, 미리 준비되어서 데우기만 하면 되었던 음식이 접시에 담겨 식탁으로 왔는데, 그게 바로 비프 부르기뇽이었다. 상차림은 간소했다. 가운데 놓인 빵 바구니, 비프 부르기뇽, 그리고 와인.


평생을 어머니나 아내가 해 준 밥을 먹고 살았을 장년의 일본 남자가 만든 프랑스 요리가 딱히 맛있을 리는 없었지만, 우리는 이십대였고, 배가 고팠고, 무엇보다 남이 해주는 음식이라면 돌이라도 씹어 먹을 가난한 유학생들이었다. 우리는 아버지 친구인, 또는 친구의 아버지의 친구인 그를 어려워하면서도 부지런히 바게뜨를 뜯어먹고, 고기를 씹고, 와인을 마셨다.

 

음식을 먹다가 문득 궁금해진 나는, 어떻게 가족을 다 놔두고 일 년이나 되는 장기간을 파리에서 혼자 보낼 생각을 하셨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손에 들었던 빵조각을 접시에 흥건한 비프 부르기뇽 국물에 찍어 입에 넣은 다음 와인 한 모금을 곁들여 삼켰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론계에 종사한 지식인에게 걸 맞는, 적절한 단어의 조합으로 연결된 영어 문장이 소리가 되어 더듬더듬, 그러나 차분하게 흘러나왔다.


“8년 전의 일인데…… 아들이 죽었습니다. 당시 스물 한 살이었지요.”


아저씨의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죽게 만든 건 사고였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가족에 대해 물었으니 말 할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지만, 손님을 불러 식사대접을 하다가 돌발적으로 할 이야기는 아닌 게 사실이었다. 음식과 와인잔 사이를 오가던 손들이 멈칫했고 식탁 위로는 돌연 긴장감이 감돌았다. 우리 셋 모두 당황했으나 갑자기 정색하며 식기를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진땀을 빼며 식사를 하고 있는 우리들 사이로, 아들의 죽음 이후로도 변함없이 이어나가야만 했던 그의 일, 일상, 그리고 삶이 어눌한 언어가 되어 천천히 유영을 했다. 아저씨의 말소리, 간간이 들리는 와인 넘기는 소리, 음식 오물거리는 소리들 사이사이에 끼인 정적의 밀도가 팽팽하게 느껴지리만큼 진땀나는 시간이었다.


식탁에다가만 눈을 꽂고 있던 나는 접시가 거의 비어갈 때쯤에야 겨우 아저씨 쪽으로 시선의 각도를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가 우리를 향해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저씨의 시선이 향한 곳은 우리 중 누구도, 방안의 어느 한 지점도 아니었다. 공간을 떠난 동공을 눈에 담은 채, 천천히 말을 고르며, 그는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고 있었던 거였다. 당시의 나로서는 막연히 짐작만 해 볼 뿐이었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잃었다니 정말 고통스러웠겠구나, 하고.


나를 닮은 분신을 둘이나 둔 지금, 탄생의 순간부터 세상에 대한 공포와 삶에 맞장 뜰만한 배짱을 동시에 내게 안겨 준 존재들로 인해 나는, 그 아저씨가 낯설고 말 설은 타인들 앞에 꺼내 놓았던 탄식의 형체를 본다. 상처가 곪고 있어도 이어나가야만 했던 8년이라는 시간, 이목을 벗어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붓질을 통해 정제하던 그의 슬픔 그리고 그리움을.


아마도 그는, 그를 아는 사람이 없는 도시에 와서야 허물어졌을 터였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입고 있던, 비통함을 내비칠 수 없게 만들었던 일상의 갑옷을 벗어버릴 수 있었던 곳에서. 비프 부르기뇽을 대할 때마다 나는, 그날의 독백과 식사 중에 감돌던 비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비프 부르기뇽은 그렇게 나에게 슬픔의 맛으로 남았다.


비프 부르기뇽에 얽힌 기억 때문만은 아니지만, 내게는 비프 부르기뇽보다 더 맛나게 느껴지는 나만의 스튜가 있다. 서양식 스튜를 먹을 때마다 딱히 감흥을 느낀 적이 없어서 내 멋대로 개발한 나만의 비프스튜라고나 할까. 무슨 거창한 음식이라고 요란을 떠나 싶으리만치 간단 버전이기는 한데, 우리 식구들은 이것만 해주면 밥 한 공기를 곁들여 맛있게 먹고 접시에 남은 국물이 아쉬워 찍어먹을 빵을 찾는다.


재료도 간단하지만 무엇보다 복잡한 과정이 없어 쉽게 만들 수 있고, 미리 해놓은 다음 먹을 때 데우기만 해도 되니 식사 직전에 바쁘지 않아서도 좋다. 기본 재료는 레드와인 한 병, 양파 큰 것 하나, 마늘 두어 쪽, 스튜용 고기 2 ~ 3파운드, 이탈리안 시즈닝 가루, 헤비크림, 토마토소스 한 병, Beef Boullion 한 조각이면 된다. 소금과 설탕도 조금씩.


먼저 고기를 한 입 크기 정도로 깍둑썰기 해놓고 한 쪽에 놔 둔 다음 양파를 적당히 썰어 마늘, 와인과 함께 블렌더에 간다. 와인은 한 병 다 써도 좋지만 한 잔이나 두 잔 정도는 식사 중 마시기 위해 남겨두어도 좋겠지. 내 경우는 요리 하는 도중 홀짝홀짝 마시기도 한다. 썰어놓은 고기와 믹서 안의 내용물을 냄비에 담고 이탈리안 시즈닝 가루를 넉넉히 뿌린 후 Beef Boullion을 퐁당 빠뜨려 놓고 불에 올린다. 국물이 부족하다 싶으면 물이나 와인을 조금 보충해 고기가 자작하게 잠기도록.


한참 끓여서 고기가 먹기 좋을 정도로 연하게 익으면 조금 졸아든 국물에 토마토소스 한 병을 통째로 붓는다. 그러고 나서 소금과 설탕으로 입맛에 맞게 염도와 당도를 조절. 얼마나 오래 끓여야 되는지를 묻는다면……

국물의 되직함이 개인의 취향에 맞을 정도가 될 때까지? 막판에 좋아하는 채소를 썰어 넣어 익혀도 좋다. 마지막으로 요리용 생크림을 적당량 추가해 토마토소스의 신맛을 잡아주면 완성.


나만의 비프스튜를 미리 한 냄비 만들어 놓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금방 지은 고슬고슬하고 따끈한 밥은 물론이고, 파스타 위에 얹어도, 매쉬드 포테이토와 함께 먹어도 별미다. 끓고 있는 스튜의 냄새가 냄비를 빠져나와 집안에 넘실거리면 하루 종일 배고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들 녀석들이 부엌에 와 얼쩡거린다.


“오늘 저녁은 뭐야?”

“엄마 표 스튜.”


환호를 지르며 식탁으로 모여드는 식구들 덕에 나는 나를 꽤 쓸 만한 주부라고 여겨 스스로에게 점수를 주고 우쭐거린다. 스산한 날씨를 따라 함께 하강했던 마음의 수은주가 금세 치솟는다. 이국땅에 뿌리를 박고, 낯선 식재료를 이용해 식구들의 배를 부르게 해줘야 하는 고충은 내가 해준 음식이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이들의 먹성으로 보상받는다.


그래서 나는 변덕쟁이다. 성큼 다가온 무채색 계절의 징후에, 존재의 남루함에, 끝없는 삶의 허무에 휘둘리던 호흡에서 무게를 거두어 내고 달관한 모성의 미소를 흉내내보는 변덕쟁이. 김을 올리는 스튜를 한 스푼 떠서 후후 분 다음 입에 넣는다. 계절을 앓느라 건초가 된 마음에 온기가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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