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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Aug 06. 2018

인터내셔널 ‘시월드’를 소개합니다!

착함도 병이런가

이미지 출처: lip magazine

     

친구 K와 만날 때 자주 즐겨 찾는 인도식 뷔페에서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근황을 묻는 말에 이야기를 쏟아내던 K가 급기야 눈물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참을성 많은 그녀지만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니 자제력이 바닥 난 듯했다. 달래주며 다독이긴 했는데 별 소용없다는 걸 안다. 내 위로 따위로 호전될 이슈가 아니니까. 사연인 즉, 기혼 여성들의 영원한 단골 소재, 고부 간 갈등이었다. 


K 부부는 미국의 IT업계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인도계 이민자들의 전형적 케이스로 미국에 왔다. 즉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미전역에서 IT 분야 인력 공급이 긴요할 때 들어와 편안하게 정착했고, 차후 성과도 좋았었던지 빠른 승진 가도를 달려 고생 없이 중산층으로 진입한 경우다. 


K는 전업주부라도 커리어가 없는 걸 아쉬워하는 유형이 아니라 자기 삶에 만족했다. 고향인 뭄바이에서도 워낙에 넉넉한 집 딸로 자랐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선을 봐서 현재의 남편을 만났다고 하는데, 당시 그는 미국의 한 회사로 취업이 결정된 직후였다고. 신혼부부일 땐 미국의 유수 도시를 번갈아 살아보면서 흥미로운 체험을 했고, 그게 시들해졌을 즈음엔 아이를 낳아 한 지역에 정착해 키우고 있으니 괜찮은 인생이었다. 


그러나 K의 평탄한 인생에도 고충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시부모님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영주권을 소유한 시부모님. 아들 때문에 영주권 수속을 밟아 취득한 경우인데, 문제는 인도에 집이 있는 그분들이 영주권자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으려면 매해 일정 기간 이상을 미국에서 체류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집밖에 나가봤자 차를 타고 쌩 지나가는 미국인들과 남의 집 잔디만 봐야 하는, 운전 못하는 노인들한테는 적막강산일 이곳에서 지내는 게 괴롭지만 버텨내야 하는. 


뭄바이에 가면, 일가친척이며 친구들이 다 모여 사는데다가 언제든 북적거리는 거리로 걸어 나설 수 있고, 적은 돈으로도 품을 살 수 있어 궂은일은 안 해도 되는 편안한 일상이 보장되는데도 그분들이 기어이 미국 영주권을 움켜쥐고 있으려는 이유는, 언젠가는 아들네와 살아야 할 텐데 그러려면 미국에 있을 수 있는 신분을 유지하고 있어야하기 때문이었다. 그분들의 사고방식에선 그랬다. 


만날 사람 하나 없이, 아들 며느리가 데리고 가주는 곳 아니면 갈 데도 없는 미국의 소도시에서 한숨 푹푹 쉬며 일 년을 지내시고는 인도로 돌아가 육 개월 동안 숨통을 트고 다시 미국으로 오시는 과정이 몇 년째 반복되고 있는데, 말이 쉽지 시부모님에게도 K에게도 못할 일이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갈 곳이 없어 집안을 뱅뱅 돌며 며느리 하는 양만 보고 있다가 기어이 싫은 소리를 하게 되고,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일거수일투족이 시부모님에게 노출된 채 걸핏하면 신경 긁는 소리까지 들으니 숨 막혀 죽겠는 지경인 거다. 무료해 죽겠다고 하시면서도 집안일에 관해선 두 분 다 손 하나 까딱 안 하신다니 K로선 약도 오르지 않겠는가. 하다못해 소일거리 삼아 화단에 물이라도 좀 주시면 좋으련만 아무리 심심해도 일이라곤 일체 하시지 않는다는 거였다.


전날 벌어진 일의 내막은 이랬다. K의 시어머니가 뭄바이에 있는 언니와 통화를 하고 있었단다. 그 집의 맏아들이 최근 나이 오십이 되어 이혼을 했는데 그 아들을 재혼시키는 문제로 자매간에 상의 중이었다고. 상대편에서 뭐라고 했는지 대뜸 K의 시어머니가 전화에 대고 하시는 말이, 부디 새 며느리를 제대로 들여서 앞으로는 언니도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말고 살라고 했다는 거다.  


“그 말을 며느리인 네 코앞에서 하셨다고? 아니, 며느리가 무슨 하녀야? 너무들 하시네, 진짜!”


있는 대로 맞장구를 쳐주고 이어서 들은 K 남편의 태도도 얄미웠다. 시어머니로 인해 상처를 받을 때마다 남편에게 구원을 요청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늘 신경 쓰지 말라거나 담아두지 말라는 둥의 영혼 없는 대꾸 뿐 중재 노력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며느리가 참아야지 어른들을 어쩌겠냐는 거겠지. 첨단 직업군에 종사하는 현대적이고 유머러스한 그에게 그런 일면이 있다니, 역시 관습의 힘이란 무시할 게 못 된다. 


한국으로 치면 한 삼십 년 전에나 통했을 정서에 해당할 인도식 시월드 일화를 조목조목 듣고 있자니 나까지 소화불량이 올 지경이었다. 함께 해결책을 궁리해본답시고 K에게 이런저런 제안을 해보지만 사실 뾰족한 수라는 건 없다.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원하는 게 정확히 뭐야? 시부모님과 따로 지내는 거야, 아님 같이 살되 시부모님이 변하길 바라는 거야?”


눈물을 닦아내며 K가 말했다.


“내 기분을 좀 존중하면서 생활하고 말씀하셨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그이의 도움이 절대적인데 그래주질 않는 게 너무 서운해. 따로 사는 건 바랄 수도 없어.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하아아아아. 답답했으나 말을 더 보탤 순 없었다. 마음 같아선, 네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결정의 주체는 남편 혼자가 아니라 너도 포함되는 거여야 한다고 일러주고 싶은데, 내 말이 씨가 먹힐까. 한 마디로, 한국의 구닥다리 주말드라마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분야에선, 관습을 벗어나지 못해 관계의 염증을 깊어지게 만드는 건 시부모뿐 아니라 며느리도 마찬가지라는 걸 한국에서 자란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누가 이해할까. 말이 좋아 지혜로운 여자 현명한 여자지, 결국 여자는 남자보다 착해야 한다는 암묵적 세뇌에 길들여져 굴레를 벗지 못하는 여자들. 그런 문화권에서 자란 여자들이 어째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모르지 않는 바, 공감이 큰 만큼 답답함도 컸다. 


고부간의 갈등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건지 사실 미국 여자들도 수다 떨다 보면 심심치 않게 시어머니 흉을 본다. 재미있는 건 그 횟수가 명절 전후로 좀 늘어나는 게 우리네와 비슷하다는 건데,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면 다 같이 모이게 되니 아무래도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나오게 마련이라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듣다 보면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안 나온다. 미국 여자들 사이에서 ‘씹히는’ 시어머니 갑질들이란 대개 내가 볼 땐 장난하나 싶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가령, 추수감사절 때마다 시어머니와 딸들 며느리들이 메뉴를 분담해서 음식 준비를 해 대가족 모임을 하는데, 매년 먹는 펌프킨 파이가 지겨워 펌프킨 치즈 케이크로 변형을 해볼까 제안했더니 시어머니가 기어이 전통식 파이를 고집하며 탐탁지 않아 했다는 정도. 매해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이면 자식들과 손주들을 대동해 크리스마스 트리를 배경으로 전원이 루돌프 잠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가풍 때문에 시어머니가 하도 법석을 떨어 아침잠을 설친다는 정도. 이런 걸 어디 한국 시월드 에피소드들에 비하느냐 말이다. 

 

이쯤에서 보면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럼 미국인 남편과 결혼한 사람들은 고부 간 갈등도 그 정도에 그치겠거니 하고. 헌데 인간의 심리라는 게 또 그렇다. 갑질도 사람 봐가면서 하게 되어 있다는 것. 미국에서 이십년 가까이 사는 동안 여러 케이스를 봤다. 미국인 시어머니에 미국인 며느리, 미국인 시어머니에 한국인 며느리, 한국인 교포 시어머니에 미국인 며느리, 한국인 교포 시어머니에 한국인 며느리. 마지막의 경우는 거기서 또 미국서 자란 교포 며느리와 한국서 자라 다 커서 미국에 온 며느리로 나뉜다. 이걸 왜 나누는가 하면 그것에 따라 고부간 관계 지형도가 디테일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비교적 상식선을 크게 넘지 않는 그룹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분류해 정리를 좀 해보겠다.


1. 미국인 시어머니에 미국인 며느리: 

서로 어느 정도 존중하고 할 말도 하는 수평적 관계


2. 미국인 시어머니에 한국인 며느리: 

한국 정서를 기반으로 한 며느리의 시어머니 공경에 초반에는 몸 둘 바를 모르며 기뻐하다가 차차 무덤덤해지면서 며느리에 대한 기대가 점점 더 커지게 되는 관계. 잘해보려다가 며느리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경우가 태반


3. 한국인 교포 시어머니에 미국인 며느리:

애당초 미국 며느리 어렵기만 하고, 한국식 시어머니 대접은 바랄 수도 없다며 기대 제로로 시작하는 관계. 운이 좋아서 며느리 성격이 상냥하기만 해도 감지덕지고 무뚝뚝하다 한들 시어머니가 왈가왈부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하는 관계


4. 한국인 교포 시어머니에 한국인 며느리: 

며느리가 미국서 자란 교포라면 한국식 반 미국식 반 절충하면서 그럭저럭 지냄. 반면 한국서 자란 며느리라면 이런 것쯤은 하는 걸로 알겠지 하는 기준치가 발동해 적시한 케이스들 중 가장 제대로 시어머니 대접을 받고자 하는 관계


*주의: 인간 사 가지각색이니 예외를 염두에 두고 읽기를.


결국 어느 관계나 다 그렇듯 사람은 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는 거다. 미국에서 자란 미국 사람들끼리 만나 가정을 이룬 경우, 어느 쪽 부모가 됐든 결혼한 자식의 집에 와 마음껏 머무르진 못한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배우자의 동의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며느리 의견은 안중에도 없이 아들 집을 내 집인 양 계시는 K의 시부모님 얘기를 듣다 보면 T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밝게 웃으며 대화하고, 상냥하고 점잖다고 여겼던 T.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백인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K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여자다. 유복한 성장기를 보냈고 현재 삶도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언젠가 여자들 몇이 모여서 차를 마시던 중인데 그때도 시어머니라는 주제가 도마에 올랐었다. 누군가가 시어머니에 대해 실컷 불만을 터뜨리고 나자 T가 말했다.


“우리 시어머니랑 비슷한 유형이군. 암튼 난 못 참아 그런 거. 그래서 난 우리 시어머니 이번에 우리 집에 오셔서 일주일동안 있다 가면 안 되냐고 아들에게 물어봤다는데 내가 딱 못을 박았잖아. 사흘까지만 된다고.”


T의 시어머니는 비행기로 다섯 시간은 와야 하는 곳에 사는 데다 다리도 좀 불편해서 일 년에 한 번이나 만날까말까 하다는 정보가 뒤따랐는데, 항상 상냥한 T의 다른 면모를 본 것 같아 나로서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T의 온화한 표정 뒤에 그토록 단호한 일면이 있었다니. 


나는 안다. 시어머니와의 사흘 동안 T가 얼마나 완벽한 며느리 노릇을 할지. 공항으로 픽업을 가 만나든 집에서 맞든, 시어머니를 보자마자 그 예쁜 얼굴로 활짝 웃으며 덥석 허그를 할 테니까. 사흘간의 무대에서 표정 한 번 구기지 않고 시어머니를 상대하고는 헤어질 땐 와주셔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며 다시 또 덥석 허그를 하고는 아쉬운 표정으로 작별을 고하겠지. 어떤 경우에서든 상대방에게 듣기 싫은 말이나 언짢을 표정 같은 건 하지 않는 T니까. 


그리고 또 나는 안다. K가 절대로 T처럼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 K의 시부모님이 T라는 며느리를 두었다면 어떻게 나오셨을까? 그건 궁금하긴 하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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