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oodlib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식세끼 Sep 14. 2022

'와알못'이  '와잘알' 되어버리고 만 사연

와알못으로 살다가 최근 들어 와인에 조금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더 깊은 음식 맛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제사 조금씩 느끼면서 시작된 변화다. 게다가 가만가만 들어보면 와인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이 참 많다. 서양 문명의 두 원류가 기독교와 헬레니즘이고, 그 교집합에서 와인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감안해 볼 때 얼마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와인을 접할 자리는 많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와인에 대해 심리적 거리감을 갖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시도와 탐구라면 꽤 열정을 갖고 있는 편이라 마시는 것 자체는 즐거웠다. 소주, 맥주, 막걸리, 그리고 어쩌다 중국술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 전투같은 술자리라면, 와인을 마시는 때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문화생활을 한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맛도 괜찮았고, 함께 먹는 음식들도 좋았다.  문화사대주의니 허세니 그런 지적질을 받기도 했겠지만, 최소한 와인 마실 때는 폭탄주를 강권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다른 자리에서 와인으로 폭탄을 제조하는 때도 있긴 했다만.



그런데 와인을 마시는 자리가 거듭될수록 묘한 소외감이 쌓여갔다. 낯선 식문화를 처음 맞닥뜨리면 초창기엔 잘 몰라도 갈수록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메뉴를 선택할 때 조금은 주체성이 생겨야 하는데, 이건 개뿔 시간이 지나도 까막눈 같은 막막함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그저 레드냐 화이트냐 정도만 구분할 뿐, 설명을 들어도 도무지 머릿속에 와 닿지가 않았다.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불어 실력이다 보니 일단 라벨을 읽는 것부터 장벽이었다. 그랜드 크루, 세인트 에밀리언이라고 읽으면 안되냐고.


20여년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어느 자리. 누군가 시킨 와인병 라벨을 보면서 “세인트 에밀리언?”이라고 읽는데 그 자리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때의 느낌은 뭐랄까,,, 두산 베어스, 키움 히어로즈, 기아 타이거스 등등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CJ는 구단이름이 뭔가요?”라고 불쑥 물어봤을 때의 반응같은 정도? 무식한 누군가가 몸을 던져 좌중을 웃겨드린, 훈훈한 분위기로 귀결되긴 했지만 와인 앞에서 나는 자꾸 작아졌다. 술자리를 좋아하고, 그 자리에서 조용히 있는 타입은 아닌지라 좌중을 즐겁게(라고 믿고 싶다)하는 내 무지는 계속 드러났다. ‘풀 바디’ 어쩌고 하는 이야기에 “풀밭이 뭐 어쨌다고요?” 하고 되묻자 한 친구는 “어떻게 그런 드립을 치냐”며 물개 박수를 치고 웃어댔다. 지금 생각해도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진다.  


답답한 마음에 와인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전혀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아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만나게 된 것이 만화 신의 물방울이었다. 누군가 빌려준 1권을 마치 빨려들어가는 듯 단숨에 읽었다. 드디어 나를 이 무식의 바다에서 건져줄 최종 병기를 발견한 것 같다는 기쁨에 서점으로 달려가 바로 10권(이었던 듯)을 냅다 질렀다. 신나서 몇권을 읽어가는데 어디서부턴가 분위기가 좀 쎄했다. 뭐지, 이건? 독자를 우습게 여기며 밀어내는 듯한 이 오만한 분위기 말이다. 종교적 신앙같은 체험과 간증을 늘어놓는 전개방식, 숭배를 강요하는 분위기. 무척이나 불쾌하고 불편했다. 주인공들이 와인을 마시고 늘어놓는 감상평은 공감보다는 소외와 거부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마치 내가 그동안 마셨던 것은 구정물이었고, 와인을 마시는 건 선택받는 자에게만 허락된 일이라는 건가?  누군가는 과도한 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당시 내겐 그랬다. 그 와중에 마음 한켠에 젖어든 판타지 사이로 자괴감을 느끼는 내 속의 모순은 또 뭔가. 불쾌한 중에도 궁금하긴 했다. 도대체 어떤 와인을 어떻게 마셔야 푸른 언덕을 뛰노는 양떼를만나고, 새소리와 함께 시냇물 흐르는 아름답던 그 시절이 내 눈앞에 펼쳐질 수 있는 건지 말이다.


와인에 대한 상식을 갖고 싶어 집어든 책 때문에 오히려 와인에 대한 거부감, 거리감만 쌓고 말았다. 혼자 빈정상하고 보니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테루아’ 타령을 하는 와인 스노브들을 어찌 그리 자주 만나게 되던지... 그리고 나의 비뚤어진 분풀이가 시작됐다. 술자리는 분위기인데, 보통 와인으로 기울려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맥주, 소주, 막걸리로 분위기를 틀기 일쑤였다. 와인 불매운동이라도 하듯 말이다.


상당기간 밥벗, 술벗이 되어준, 그래서 뒤틀린 내 거부감을 보아온 지인은 어느날 조언했다.

“웬만하면 다들 개소리하는거 맞다. 그러니 무시하고 편하게 마셔봐라. 너같이 먹을 것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식도락의 즐거움을 훨씬 넓혀줄거다.”

“내게는 구름도 양떼도 풀밭도 펼쳐지지 않더라. 그냥 상큼하다, 달달하다, 밍밍하다, 많이 떫다 정도다”

“그거면 됐다. 그렇게 마시다가 더 땡기는 맛이 있으면 이름 기억했다가 나중에 또 주문하면 된다.”

전혀 특별한 말도 아닌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살짝 마음이 풀리는 듯 좀 편해졌다. 원래는 같이 맥주 한 잔 하자고 만났다가 그 친구 손에 이끌려 자리를 옮겼다. 와인 메뉴판을 든 친구에게 “안 달고 상큼한 거”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화이트 와인 한 병이 나왔다.

“이거 단맛이 강하지 않으면서 엄청 청량하네. 그럼 나중에 어떻게 찾아야 해? ”

“일단  소비뇽 블랑, 뉴질랜드 말보로. 품종이랑 만들어진 지역이야, 이렇게만 기억해. 이 정도도 충분해.”

와인을 계속 음미하다보니 뜬금없이 이육사의 시 ‘청포도’가 떠올랐다. 시원하고 상큼한 기운이 더해지며 시에서 묘사됐던 장면이 눈앞에 살짝 아른거리는 듯했다. 청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밭이 생각난다고 하자 그는 “양떼는 재수없고 포도밭은 괜찮냐”며 낄낄댔다.


얼마 뒤, 30년 안팎의 음주경력을 자랑하는 벗들 3명과 스페인 음식점에서 만났다. 산 미구엘과 에스트렐라 담 중에서 뭘 시킬까 고민하는데 한 명이 “왠지 여기선 와인을 마셔야 할 것 같다”고 분위기를 잡았다. 그전 같으면 서빙하는 분에게 추천해 달라고 했을 게 분명했겠지만 뭔 바람이 들었는지 한번 주문해 보기로 했다. 뉴질랜드 말보로 소비뇽 블랑으로 하고 싶다고 하자 서빙하던 직원은 2가지가 있다며 설명한다. 젠장. 와이너리 이름까지 알아 놓을걸. 하지만 메뉴판을 보니 잠깐의 갈등은 바로 정리됐다. 하나는 6만원, 하나는 9만8000원. 직원이 메뉴판을 들고 돌아서기 무섭게 벗들은 ‘오오올~‘하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유유상종이라고, 이러니 이 친구들과 지금까지 만수산 드렁칡처럼 엉켜있는 거겠지. 시트콤같은 이 장면은 와인이 나온 직후 터진 한 친구의 반문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너 화이트 와인 시킨 거였어?”


매거진의 이전글 영국의 대표음식은 피시앤 칩스가 아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