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언가 한번 먹어봐야겠다고 꽂히면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한 못해도 한달 내에 먹어볼 정도로 식탐과 집착이 충만한 인간인데, 이 푸틴을 먹어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 편이다.
푸틴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올 3월 외신을 통해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이름이 같은 이 음식 푸틴이 수난을 당하게 됐다는 웃픈 이야기였다. 우리가 아는 사람 이름 푸틴은 Putin이고 이 음식은 poutine.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음식 푸틴까지 괜히 미움을 사는 바람에 식당들이 음식 메뉴에서 이걸 뺐다거나 공격과 위협을 받았다는 그런 내용이다.
푸틴은 캐나다 퀘벡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한다. 요리는 간단하다. 감자를 튀긴데다 치즈 커드와 그레이비 소스를 끼얹은 것이다. 커드는 우유에서 유청을 분리한 덩어리이므로 원초적 치즈 쯤으로 보면 될테고, 그레이비 소스는 육즙을 농축시킨 소스다.
미국이나 영국 작가들이 쓴 소설에 보면 종종 음식 묘사하는 부분에서 그레이비 소스가 등장한다. 실제로도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아주 대중적이고 많이 먹는 소스다. 국내에서는 다른 소스와 달리 마트에서 쉽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럴만도 한 것이 이 소스 먹어보면 니맛도 내맛도 아닌 오묘하게 느끼한 맛이 난다. 딱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맛이다.
그전에 이 소스가 궁금하긴 했었으나 취재하면서 만난 한 프랑스인 요리사가 했던 말 때문에 그 생각이 싹 날아간 적이 있다. 오븐에서 쇠고기 덩어리를 굽고 난 뒤 아래 팬에 흥건하게 고인 육즙과 기름기를 가리키며 그는 말했었다. "이걸 모아서 만든게 미국 사람들이 먹는 그레이비 소스란다. 알겠니?"
상상해 보시라. 그 비주얼을 보며 그런 말을 들었으니... 그때부터 그레이비 소스는 내게 식욕감퇴제 같은 트라우마를 남기고 말았다. 때문에 이후에 책에서 그레이비 소스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괜히 속이 메슥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딱히 먹어볼 생각을 않던 그레이비 소스에 대해 생각이 바뀐 계기는 작년에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으면서였다. 주인공을 행복하게 해주는 식탁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남루한 식탁이든 근사한 레스토랑이든 어디서든 리스트에 오르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소설을 보면서 트라우마가 살짝 극복됐고, 기회가 되면 한번은 먹어보자는 정도로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그러다가 앞서 이야기한 저 뉴스를 접하며 본격적으로 한번 먹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찾아보니 푸틴을 파는 곳이 서울에도 몇몇 곳 있다. 굳이 찾아가기가 애매한 거리라 대충 뭉기적대고 있었는데 회사와 가까운 서촌의 한 식당 메뉴에 '푸틴'이 떡하니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됐다. 마침 외부 손님과 만날 식당을 정해야 했던 상황인지라 이 식당을 예약했다. 메인 요리는 따로 있고 푸틴은 어차피 감자튀김 정도의 사이드 메뉴이므로 이런 자리에서 큰 모험이 될 상황은 아니었다. 탄산음료가 포함된 푸틴 가격은 1만원. 감튀 주제에는 좀 비싸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다 싶었다.
드디어 나온 푸틴.
주문하기 전에 동석한 분에게도 설명을 했던지라 그도 엄청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음... 감튀군요. 짭짤하지 않은"
"느끼함 폭발이네요. 탄산이 같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그는 한번 먹고 거의 손을 대지 않았고 나는 계속 먹었다. 케첩이나 우스터소스, 혹은 허니 머스타드가 있으면 달라고 하고 싶었었지만 그런 '잡'소스가 더해진다면 푸틴이 아닐터. 자꾸 먹다보니 먹을만은 했지만 그에 비례해 느끼함도 쌓이듯이 차고 올랐다. 콜라로는 가시지 않는 이 느끼함, 상큼한 화이트 와인 마시면 좀 가라앉을까. 어마무시하게 탄산과 와인을 부르는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