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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아귀의 기억 : 어둠과 영원의 순환

by CAPRICORN

Fact:

지구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곳, 심해.

그곳에는 약 1억 년 전, 공룡들과 함께 나타난 괴생명체가 있다. 바로 심해아귀다.

이들의 번식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독특하다.

수컷은 자신보다 20배나 큰 암컷을 만나면, 몸을 스스로 포기한다.

암컷의 몸에 결합한 후, 자신의 모든 기관을 퇴화시키고, '정자 제조기'로만 남는다.


Question:

단순한 생물학적 본능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단순한 번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면 어떨까?

만약 수컷 심해아귀가 이 결합의 과정을 통해 육체뿐만 아니라 기억까지 이어받는다면?

그래서 영원히 자신의 삶을 반복하며 살아야 한다면?

이 모든 고통과 반복 속에서, 나는 그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원히 삶이 반복된다면, 과연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Begin:

이 질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영원히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 한 심해아귀의 이야기다.

그의 삶은 끝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1억 5천 년을 살아온 한 수컷 심해아귀의 이야기다. 그는 수없이 많은 암컷과 결합하며 세월을 견뎌왔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이상 이 삶을 견딜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은 죽음을 열망했지만, 그의 몸은 결코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는 심해아귀의 독특한 생태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컷 심해아귀는 번식 과정에서 암컷의 몸에 흡수되며, 신체 기관이 퇴화하여 인간으로 치면 '정자'와 같은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새롭게 태어난다면 좋겠지만, 문제는 '기억'마저도 전승된다는 것이다.

처음 몇 천년 동안 그는 암컷과 결합하며 삶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라 믿었다. 암컷과의 결합이 자신을 완전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암컷과 결합해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이제 그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않았다. 수컷이 아닌 암컷으로 태어난다면 '무'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그는 결국 "수컷"으로 태어나 다시 그 삶을 반복할 뿐이었다.

과정이 반복되면서 생명이 이어지는건지 '나 자신'이 이어지는건지 공포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존재하는지 조차 의문이었다. 생명이 이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기억만이 부유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공포는 그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는 암컷과의 결합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번식을 멈추면, 언젠가는 그에게도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암컷들이 있는 곳을 피해 심해의 어둠 속 깊숙이 숨어들었다. 그러나 그의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지혜와 생명력은 오히려 강력한 아우라를 형성했고, 그 아우라는 주변의 암컷들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가 아무리 도망치고 숨으려 해도, 암컷들은 그의 존재를 느끼고 그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오히려 암컷들을 매료시키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의 고통과 절망은 다른 이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볼 때마다 그의 깊고 강렬한 에너지를 느끼며 더욱 그에게 다가왔고, 번식을 반복했다. 암컷으로 태어났다면 '무'와 가까워졌겠지만, 수컷으로 다시 태어난 그는 그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아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자신의 운명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다. 이 고통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며, 그는 이 지옥 같은 삶을 영원히 견뎌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두운 그의 눈에 작은 빛이 반짝이며 떠올랐다. 그 찬란한 생명체는 한순간 세상을 밝히고, 이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그 빛을 좇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지만, 닿지 않았다. 아스라이 사라진 빛의 잔상만이 남았다. 그러나 이내 또 다른 빛이 나타났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형태는 심해 곳곳에서 반복되어 보여졌다. 그는 그 작은 빛 속에서 자신이 잊고 있던 무언가를 보았다. 닿을 수 없기에 더 간절한, 사라지기에 더 찬란한. 반복되는 삶은 결코 무의미 하지 않았다. 그 안에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찰나들이 있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대신, 그는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는 죽음이란 단지 또 다른 형태의 욕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끝없이 반복되는 이 삶에서, 고통마저도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더 이상 죽음을 바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로 했다. 매 순간이 반복될지라도, 그 순간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즐기기로 결심했다. 반복되는 삶의 고통 속에서, 그는 점차 고통을 초월하기 시작했다. 고통은 더 이상 그의 존재를 지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순간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면서, 점차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번뇌의 과정 속에서 그는 이미 수백 번, 수천 번을 다시 수컷으로 태어났다.

그는 끝없는 심해의 어둠 속에서, 이제 더 이상 과거의 고통에 얽매이지 않았다. 죽음은 더 이상 그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영원한 삶 속에서 그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반복되더라도, 그는 그 반복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죽음을 열망하지 않았다. 고통도, 욕망도 사라진 채, 그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고통받는 존재가 아니다. 이제 그는 심해의 끝없는 어둠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 영원히 계속되는 삶 속에서 그는 매번 새로운 의미와 목표를 찾아가며, 매 순간을 진정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제 끝나지 않는 여정의 시작일 뿐이다. 지금도 바다 깊숙한 곳에는 1억 5천 년, 혹은 그 이상을 살아온 심해아귀가 있다.

매 순간을 새롭게 채우며, 다른 의미와 생명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 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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