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된 자유의 한계
지구에서 가장 독특한 생존 전략을 가진 포유류, 벌거숭이두더지쥐.
이들은 철저한 계급 사회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여왕은 페로몬으로 모든 개체를 통제하고, 암컷들은 스스로 번식을 억제하며 협력한다.
노동개체는 터널을 확장하고 먹이를 모으며, 병정개체는 외부 위협으로부터 집단을 방어한다.
이 모든 것은 본능에 따라 이루어지며, 집단의 생존을 위해 개인은 철저히 희생한다.
자발적 복종과 협력은 이들이 수백만 년을 살아남은 비결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단순히 본능일 뿐일까?
번식을 억제하고 여왕을 따르는 삶은 진정으로 자발적인 선택인가?
만약 한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자신만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면?
그들의 사회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질서와 자유 사이에서, 개인의 선택은 집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실험 기록 1: 완벽한 사회의 시작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사회는 흠잡을 데 없는 기계와 같았다.
여왕의 페로몬은 집단의 모든 개체를 통제하며, 각자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노동개체는 터널을 넓히고, 병정개체는 외부의 위협을 막으며, 여왕은 번식에 전념했다.
이 사회는 완벽해 보였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안정적이었다.
나는 이 사회를 해체하고 싶었다.
질서를 무너뜨리면, 이들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협력 없이 생존이 가능한가? 아니면 새로운 질서가 나타날 것인가?
실험 기록 2: 728번의 탄생
728번은 호르몬 교란제와 스테로이드 강화제로 설계된 개체다.
그녀는 여왕의 페로몬에 반응하지 않았고, 번식 억제 호르몬이 무력화된 상태였다.
수컷들은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끌렸고, 그녀의 신체는 다른 개체들보다 훨씬 크고 강했다.
728번은 단순히 실험체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발적 계급사회의 균열을 일으킬 촉매였다.
나는 728번을 집단에 투입하며 기록을 시작했다.
실험 기록 3: 질서의 첫 번째 균열
728번의 존재는 처음에는 미미한 균열을 일으켰다.
수컷들이 여왕의 곁을 떠나 그녀를 따라다녔고, 암컷들은 번식 억제가 풀리며 페로몬의 통제를 벗어났다.
노동개체들은 점차 터널 작업을 멈췄으며, 병정개체들은 내부 갈등에 휘말렸다.
여왕은 강한 페로몬을 방출하며 통제하려 했지만, 728번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집단의 중심에 서 있었을 뿐이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실험 기록 4: 여왕 체제의 붕괴
결국 여왕 체제는 무너졌다.
728번은 여왕과 싸우지 않았다. 그러나 여왕의 권위는 점차 약화되었고, 집단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암컷들은 각자 자신의 무리를 조직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했고, 수컷들은 728번과 다른 암컷들 사이를 오가며 방황했다.
터널은 더 이상 협력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외부의 포식자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728번은 여왕의 대체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새로운 여왕이 되지 않았고, 자신을 따르는 개체들 속에서 독립적인 위치를 유지했다.
그녀는 완전히 혼자가 아니었지만, 기존의 집단 질서 속에서도 완벽히 속하지 않았다.
실험 기록 5: 새로운 사회의 탄생
728번의 존재로 인해 벌거숭이두더지쥐 사회는 소규모 무리로 나뉘었다.
각 무리는 자신의 터널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협력 없이 생존을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노동과 방어의 효율성이 낮아지면서, 많은 개체들이 생존하지 못했다.
터널의 규모는 줄어들었고, 포식자들의 침입은 빈번해졌다.
728번은 한 무리를 중심으로 남아 있었지만, 그 무리 또한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녀의 존재는 기존 질서를 무너뜨렸지만,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에는 부족했다.
실험 기록 6: 결론
728번은 집단의 질서를 해체하는 데 성공했지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가 이끈 새로운 사회는 기존의 협력 기반 사회만큼 강하지 못했다.
질서가 사라진 자유는 분열과 혼란을 가져왔다.
그 자유는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외부에서 강요된 것이었다.
나는 데이터를 정리하며 다음 실험을 계획한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흥미로운 시작이었다.
이제 인간 사회에서 그 실험을 확장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