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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을지 Sep 04. 2019

출근을 한다는 것

난 지금 올바르게 쓰이고 있나.

"팀장님, 아니 부장님.. 저 이제 필요 없어요..?"

수화기 너머로 내 후임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일주일 뒤면 5년 가까이 함께 했던 내 후임이 퇴사를 한다.


최근 1년 간 육아휴직 만료 시기가 다가오면서 일과 육아 사이에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하다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일이 너무 하고 싶은데 아이를 위해 육아맘은 포기하는 걸로..


며칠 전까지 한두 차례 복귀를 권유했을 땐 이미 마음의 정리가 된 것처럼 이야기해서 정리된 줄 알았는데 막상 시일이 다가오니 맘 속이 복잡하고 미련이 남았던 모양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나 역시 먹먹했다.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냈고, 누구보다 에너지가 있었던 후임이라서 더더욱.


일을 한다는 건 무엇일까.

출근할 곳이 있다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닐까.

 

나의 20대 끝자락.

패기만으로 상경한 그 해 겨울은 누구보다 추웠다.
준비된 게 너무 없어서 나를 증명할 길이 없었으니 뭘 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게 당연했던 시절.

힘들게 상경한 만큼 괜한 의미부여를 하며, 꼴에 아무 일이나 하고 싶지 않았다. 그야말로 꼴 값이었다.
내가 문을 두드린 곳은 대체로 인재 채용을 하고 있지 않거나 날 원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곳에 입사지원을 이메일 방식으로 해봤는데 제대로 확인하는 곳이 거의 없어서 서류 들고 찾아갔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 난 이런 사람이다.

- 당신 회사에 관심이 아주 많고 함께 일하고 싶다. - 나를 채용해달라.

- ㅈㄴ열심히 잘해보겠다.

이럴 때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뭐지 이 새끼.. 똘아인가?'  or  '오..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나 본데?' (참고로 특별한 능력 따윈 없었다)

주로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 근처에서 많이 시도했다. 거기가 스포츠 메카라서 (스포츠는 신이 주신 완벽한 즐거움이다)


게 중엔 나를 기특하게 보는 곳도, 신기하게 보는 곳도, 짠하게 보는 곳도 있었는데 그중 한 곳은 실제 날 채용하려고 했었다. 결과적으론 내부에 강력한 반대자가 있다고 해서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패스.


암튼 난 입사지원을 하기 전 3가지를 확인하는 편인데..

1. 회사의 가치관에 내가 동의할 수 있는지

2. 미래 회사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곳인지

3. 그 틈에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참 웃기다. 스펙도 쥐뿔 없는 구직자 주제에 나름의 기준을 두고 선별하고 있었으니. 아까도 말했지만 그야말로 꼴 값이었다.

하지만 보통 이런 소강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자존감은 급격히 하락하게 되고, 가끔은 스스로 좋지 않은 선택에 합리화를 하게 된다. 상황은 꼴 값에서 단번에 주제 파악으로 전환되며,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란 걸 분명 아는데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의 생계가 위협받으니 선택 폭은 더욱 좁아진다.


내가 미치도록 견디기 힘들었던 건,

아침마다 갈 곳이 있는 사람들의 반대편에서 우르르..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밝은 얼굴이든, 어두운 얼굴이든, 잠이 덜 깬 얼굴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움직이고 있었고, 난 멈춰 있었다.

그들은 매일 아침 가야 할 목적지가 있었고, 난 없었다.

그들은 투덜대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쓰임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난 영혼까지 갈아 넣을 준비가 되어있지만 쓰일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 지점이 무척 힘들고 괴로웠다.


의미 있는 곳에 나란 사람이 잘 쓰였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은데 이게 안되니 답답하고 미칠 노릇일 수밖에..

남들보다 많이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지만 이 글은 내가 나를 위해서 쓰는 글이며,

특별함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마주하는 모든 직장인을 위한 글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의 보통날이 나에겐 특별했던 그때.

거꾸로 특별한 날이 연속되면 '일상'이 된다.

어쩌면 우린 매일 특별한 날이 반복되는 하루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매일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 출근을 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이런 대단한 일에 내가, 우리가 올바로 쓰였으면 좋겠다.

하루의 3분의 1을 대단한 일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텐데, 의미 없이 보내면 특별한 하루가 너무 아깝지 않겠나.

난 내가 아무 곳에 쓰일 데가 없는 그 시절로..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팀장님, 아니 부장님.. 저 이제 필요 없어요..?"

"아니. 너 필요해"

"마음은 출근해서 같이 일하고 싶어요. 예전처럼"

"나중에라도 복직하고 싶으면 꼭 이야기해줘."


먹먹했지만 애써 담담하게 통화하고 끊었던 그 시간은 나의 아침 출근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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