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무엇인가_히라노 게이치로
'내 마음, 나도 모르겠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의식했던 건 중학교 때 즈음이었다.
'즐겁게 지내려는 나'와 '책임을 다 하려는 나'가 대립하는 듯, 공존하는 듯 종종 혼란스러움을 느끼곤 했던 거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하곤 하지만 아직 정답을 얻지는 못했다. 솔직히는 지금도 '정답이 있는가?'하는 문제조차 확신이 없다. 혹은 '정답 같은 것 없으면 또 어때'하고 생각하고 마는 거다.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인간의 페르소나, 가면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 그 전에 어디선가 '페르소나'라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겠지만 어떤 느낌인지 확연히 와 닿지 않았던 거다. 이것도 벌써 6년 이상 이전의 이야기다. 그리고 '페르소나'가 그럴 듯 하기는 하지만 '나'를 확실히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뭔가 비슷하지만 다른, 적어도 나는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느꼈던 거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역시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지만 곧 질려버리고 말았다. 무수한 이론들이 '나'를 해석하고 설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소설 속에서 만나는 입체적인 성격의 인물들을 보면 어쩐지 위안이 되는 걸 느끼곤 했기에 자꾸만 소설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 안에서 무수한 나를 만나는 기분과 실체를 비로소 확인한 것 같은 안심을 느꼈다. 거짓된 것도 아니고, 실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꾸며낸 것도 아닌 나와 나들. 각각의 이야기들은 그 모든 것이 한 사람 안에 존재하는 것이 결코 기이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시키고, 증명해 주었다.
히라노 게이치로 역시 '나'에 대해 오래전부터 고민해온 모양이었다. 정체성, 성격, 진정한 나. 누구나 한 번은 고민하다가 잊고 지나쳤을 것들을 그는 조금 더 깊이 사유하고 분석했던 거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 책 <나란 무엇인가>는 그 사유의 결과물이 된다. 정확히는 결과물의 일부인데 그 이유는 그의 작품 속에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는 것을 통해 얻어낸 결과를 정리해 놓은 것이 이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란 무엇인가>를 읽기 전에 어빙 고프먼의 <자아 연출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말하는 분인과는 조금 다르지만 상황과 상대에 따라 연출을 달리 한다는 어빙 고프먼의 견해는 흥미로운 것이었다. 분인과 연출의 개념에서 공통적인 것은 일부러라거나 억지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황과 상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것으로 '이중인격'이라거나, '다중 인격'이라거나, 한결같지 못하다거나 하는 생각으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길어져 버렸다. 책으로 돌아가야겠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나란 무엇인가'하는 이야기를 진전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없던 개념을 만들어 낸다. 그 개념이 바로 분인이다. '분인'이란 영어의 개인을 의미하는 단어인 'individual'에서 'in'을 뺀 'dividual'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individual이 개인이라는 의미 이전에 어원 상 '더 이상 나눌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다는 것에 착안한 거다. 'dividual'이라는 표현은 개인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나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하면, individual이 '개인'이라고 해석되며 더 이상 나눌 수 없음을 뜻한다면 dividual은 '분인'이라고 해석되고 나눌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는 이야기다.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다른 사람처럼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이야기가 되는 거다.
'분인'이라는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분인이 생겨나는 이유가 억지스럽지 않다는 거다. 사람과 사람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분인이 생겨나고, 그 상호작용이 끝나면 그 상호작용 속에서 생겨난 분인은 점차 옅어지게 되며, 만약 누군가를 살해한다면 그것은 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 아니라 살해당한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분인이 생겨난 다른 사람의 분인까지를 해치는 결과가 된다는 해석 역시 흥미로웠다.
분인의 개념을 확장시키면 개인의 성격에 이르게 된다. 분인들이 모여서 한 개인을 이루는 것이기에 어떤 분인들이 있는가에 따라 성격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거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과의 관계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성격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무의식의 발현이니, 욕망의 변화니 하는 이야기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을 다 읽기는 했지만 읽음으로써 무엇을 얻었고, 어떤 것이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 오래 고민해왔던 문제에 힌트를 얻은 것은 물론 커다란 기쁨이다. 억지로 성격을 바꾸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주는 안심도 있다.
더 솔직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조금의 확신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나를 하나로 규정하려고 할 필요는 없고, 현재의 나를 고수할 필요도 없으며, 모두에게 한결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도 없고, 억지로 꾸밀 필요도 없다.
이 정도의 생각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분인의 핵심은 개인이 아니다.
관계 혹은 상호작용이 분인을 만든다는 것만 기억하자. 그 분인이 모여 성격이 되고 개인이 된다는 것도 함께.
우리에게는 조금 더 많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관계가 필요하다. 성격이란 잘 짜인 틀이 아니다. 오히려 어느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변화하는 물에 가깝다.
너무 '나'를 괴롭히지 말자. 나도 나를 모르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