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할 수 있나요

다만 걷고 또 걸어갈 뿐인걸요

by 가가책방

"부모가 되기 전에는 모른다."라고 한다.

부모에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어서, '진짜 부모'가 되기 전에는 모른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쩐지 모르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모르면 괴로움도 덜할 테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보고 왔다.

최근에 본 세 편, <환상의 빛>, <태풍이 지나가고>, <걸어도 걸어도> 모두 극장에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무려 두 편은 재개봉 영화였으니, 이런 적절한 시기에 알게 된 것도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지.


<걸어도 걸어도>는 <태풍이 지나가고>와 비슷한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어머니와 아들은 같은 배우가 연기를 했기에 과거의 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결과적으로 생각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남았고, 오히려 모르는 채로, 아무 생각 없이 보는 편이 몰입하기에 더 좋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걸어도 걸어도>는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의 이야기다. 그것도 보통의 떠남, 언젠가 어디에선가 우연히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인 떠남이 아니라 '죽음'을 경계로 하는 그야말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 단절이 확고한 떠남을 배경으로 한다.


떠난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다. 다음 세상이 있다면 거기서 살아갈 테고, 없다면 사라졌을 테지. 남은 사람은 도무지 자기 생각만 하고 살고 싶다고 해도 그럴 수 없기에 마음에 담고, 묻고, 짊어질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흐르며 체중이 늘어나는 게 당연한 일이라면 그 체중에는 내 것이 아니었던, 어떤 것들도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장남을 사고로 잃는다. 그런데 이 사고란 아들의 부주의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일어난 일이다. 집안의 기둥이었던, 의사인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갔을 아들의 죽음도 벌써 10년 전의 일이 되었고, 이제는 얼마쯤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마음의 짐도 조금은 덜어졌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미련도, 짐도, 원망도, 미움도 세월은 조금도 집어삼키지 못한다.


차남이 결혼한 상대 역시 남편과 사별한 여자다. 거기에 초등학생인 아들까지 있다. 아들에게는 죽은 아버지와의 추억이 여전히 남아있고, 앞으로도 간단히 지워지지 않을 거였다.


장남을 잃은 부모와 오빠 혹은 형을 잃은 남매,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빠를 잃은 아들.

이 영화는 그렇게 잃어버린 것들이 만들어낸 공백을 가족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그 공백이 어떻게 메워져 가는지까지를.


일본어에 'かわり'라는 단어가 있다. 의미는 '대신' 혹은 '대리'정도가 될까.

<걸어도 걸어도>를 보며 떠올린 첫 번째 의문이 바로 이 'かわり'다.


"누군가가 다른 누구를 대신할 수 있을까?"


대답도 준비했다.


물론,

"없다."다.


누구의 몫까지 산다거나, 힘을 낸다거나, 열심히 한다면 그것이 그 누구를 대신하는 게 되는 걸까?

사람의 마음 역시 무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 텐데, 그 마음에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잔뜩 들여놔야 한다면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의 사랑은 순수한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를 위해 누군가의 마음을 져버리거나, 누군가를 위해 나를 져버려야 하는 양자택일.

사랑이 그래도 되는 걸까.


부모와 자식의 태도는 명백히 다르다.

'진짜 부모'가 되면 알 거라고 말하는 대목도 여기다.

자식을 잃은, 그것도 누군가를 대신해, 타인의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나의 자식을 잃어버린 재난을 당한 부모의 마음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일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식을 '대신'해 살아남은 이에게 그 책임을 물어도 되는 걸까?


화기애애한 듯 보이지만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대단히 무겁다.

실직과 외도, 사별과 재혼, 재혼 가정에서 흔히 겪는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차별.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아있고, 살아있어야 할 사람이 죽어버린 상태.

거기에 죽은 사람이 더 가치 있다고 믿는 개인 혹은 집단의 원망과 원한.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해결될 수 없는 그런 갈등이 아닌가 말이다.


길은 있다.

아마도 딱 하나가.

원망과 미움, 슬픔과 괴로움을 품고 있는 이들도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거다.

죽음은, 이 세상에 적지 않은 평화를 가져온다.


이상한 일이다.

죽음이 혼란을 가져오고, 그 혼란을 죽음이 가져가니 말이다.


왜 제목이 걸어도 걸어도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영화도 거의 끝나갈 때쯤,

노래 한 곡이 흘러나온다.


그 노래 가사에, 걸어도 걸어도가 나왔다는 건 얘기하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겠다.


걸음,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을 때가 있다.

걸어도 걸어도 오히려 멀어질 때가 있다.

너무 빨리 걸어서 지나쳐 버릴 때가 있다.

너무 늦게 걸어서 지쳐 버릴 때가 있다.

우리는 보통,

거의 언제나,

한 걸음 늦어버리고 만다.

단 한 번뿐인 기회를 놓쳐버리기 일쑤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계속 걷고 또 걸을 수밖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사진을 봤다.

산적같이 생겼으면서,

참 보드라운 이야기를 만들 줄 안다.

그러면서 산적처럼 잘도 마음을 훔쳐간다.

그저 나는 빼앗긴 마음을 찾으러 걷고 또 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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