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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아 있는 나날이 어떨 거라는 생각, 상상을 해 본 기억이 없다.
있었다 해도 계획보다는 상심 쪽이었던 듯하고.
<남아 있는 나날>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맨부커상을 안긴 작품이다.
영국의 유서 깊은 가문에서 집사로 일하며 주인의 뜻과 의지, 행위의 정당하고 올바름을 의심하지 않았던 남자.
충성스럽다고도 할 수 있지만 다르게 말하면 비겁하다거나 자기기만에 빠져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집사로서는 완전한 봉사, 역할을 수행했을지 몰라도, 상식적인 사람, 인간의 범주에서는 얼만큼은 동떨어져 있는 비인간적 인간.
감정을 느꼈음에도, 알아차렸음에도 끝내 모른 척 스스로를 속이던 순간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사랑.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옛 사랑의 회상은 여전히 달콤하지만 씁쓸함도 가시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영광의 시절로부터 수십 년.
과거의 영예는 사라지고 미국의 신사를 새 주인으로 맞은 나이든 집사.
생각도, 행동도 전혀 다른 새 주인 앞에서 베테랑 집사는 자신의 존재와 오랜 시간 믿어왔던 품위의 가치와 의미에 회의를 품는다.
정확히는 과거에는 모른 척 외면할 수 있었던 모든 걸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던 거다.
수십 년 만에 맞은 일주일 간의 휴가.
집사라는 자리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와 의미를 찾으러 가는 여정을 떠난다.
여행의 끝에서 이 남자가 찾아낸 대답이 남아 있는 나날을 더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만들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나날이 남아 있다 해도 나 혼자만의 나날이라면 역시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나날이라고 해도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없다면 여전히 쓸쓸할 테니.
느리고, 조용하고, 속터질만큼 답답하지만 마지막 문장 즈음에 닿으면 ‘오늘을 잡아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