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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Mar 30. 2018

사랑이라는 위험한 착각

푸른 수염의 아내들은 왜 살해당했나.

<푸른 수염>_아멜리 노통브/열린책들

푸른 수염을 가진 귀족이 있다. 

그는 아내가 될 여자를 찾고, 어떤 여자들이 아내가 되기 위해 찾아온다. 

이제 아내가 된 여자에게 푸른 수염은 단 한 가지만은 하지 말라고 말한다.

"집 안에 있는 '어떤 방'에만 들어가지 마시오."

 여자는 그러겠다고 약속하지만 호기심이 여자의 약속을 이긴다. 어쩌면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약속을 어기고 '어떤 방'에 들어간 여자는 죽었으니까.

 푸른 수염의 귀족이 다시 아내가 될 여자를 찾는다.

아내가 되고, 약속하고, 약속을 어기고, 살해당하기를 반복한다.

 푸른 수염은 자꾸만 아내가 될 여자를 찾고, 여자들은 아내가 되려고 찾아온다. 

푸른 수염은 약속을 받아내고, 여자는 약속을 어기며, 죽는다.

 이쯤되면 포기할만 한데 푸른 수염은 한 번 더 아내가 될 여자를 찾는다. 

이번 여자는 만만치 않았다. 결국 오빠와 힘을 합친 여자는 푸른 수염을 죽이고 재산을 차지한다.

 이 이야기에는 사랑이 없다. 욕망, 어리석음, 어리석은 욕망, 욕망의 어리석음만 있을뿐.


<푸른 수염>은 동명의 동화 <푸른 수염>을 모티브로 해서 지어진 소설이다. 아멜리 노통브를 처음 읽었는데, 쉽고 빠르게 읽히는 속도에 깜짝 놀랐다. 


 소설에서는 동화 속 푸른 수염 대신 돈 엘레미리오 니발 이 밀카르라는 귀족이 자신의 집에 세 들 세입자를 구하고 있다. 이번에 앞서 이미 여덟 번의 세입자 구하기가 있었고, 여자들이 세입자로 뽑혔으며, 세입자로 들어간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실종'이라고 했다. 귀족의 집에서 사라진 이후 두 번 다시 그 여자들을 만난 사람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죽었다거나 살해당했다고 하지 않고 '실종'됐다고만 했다.

 세입자로 들어간 여자들 중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음을 알지만 세입자를 모집할 때마다 여자들이 몰려들었다. 아홉 번째인 이번에도 열여섯 명이나 되는 여자가 찾아왔다. 

 벨기에 여자 사튀르닌 퓌이상도 열여섯 명 중에 있었다. 말도 안 되게 싼 월세로 호화로운 집에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다른 누구도 아닌 사튀르닌이 새로운 세입자로 선정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에서도 귀족이 제시한 금지 사항은 하나다. 

'암실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 것.'

그 외에는 집안 어디든 갈 수 있으며 뭘 하든 자유였다.

 

 귀족, 엘레미리오는 돈 많고, 요리에 능하며, 바느질은 물론 사진까지 잘 찍는 만능 재주꾼이다. 그런 그에게도 나쁜 버릇이 있는데 자꾸만 사랑에 빠진다는 거다. 상대가 자신을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더라도 사랑을 고백하고, 구애하기를 멈추지 않을만큼 뻔뻔한 태도로 말이다.

 사튀르닌은 이 변태에 살인마임이 분명한 남자를 경계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경계심이 자꾸만 누그러진다. 경계심은 호기심으로 바뀌며 엘레미리오를 설득하기에 이른다. 

 진실은 암실 안에만 있고, 암실 안에는 죽음만이 있다.


 푸른 수염과 엘레미리오의 공통점은 들어가지 말라고 금지했을뿐 방문을 잠그거나 막아두지 않았다는 거다. 엘레미리오는 말하기를 잠그거나 막는 건 의미가 없었을 거라 한다. 잠겨 있거나 막혀있어도 호기심을 멈출 수는 없었을 거라고 말이다. 호기심이란 녀석은 분명 무모하고 참을성이 없다. 왠지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인간에 내재된 고질병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다. 

엘레미리오는 일방적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선물 공세와 요리 뽐내기를 그치지 않는다. 급기야는 최대의 호의라고 할 수 있는 암실의 비밀도 알려준다. 하지만 엘레미리오가 어떤 호의를 베풀고, 희생을 감수한다 해도 그런 게 사랑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자신이 사랑하게 된 사람은 자신을 사랑할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만든 착각. 늘 이야기하지만 그런 착각은 둘 모두를 비극으로 끌고 가게 된다. 


 사튀르닌은 자유를 만끽한다. 자신을 시험하고 구속하려는 엘레미리오도 적절히 이용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자유, 신처럼 무책임할 수 있는 자유가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자유를 이용했다면 그 이용한 만큼 삶에 돌아오게 되는 거다.


 <푸른 수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사튀르닌의 태도도, 엘레미리오의 비밀도 아닌 황금을 찬양하는 표현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물질이라는 황금. 좀처럼 변하지 않아서 왕의 관이나 신의 형상을 짓는데 쓰인 황금을 다양하고도 적절하게 묘사해서 그려 보여주는 거다. 그 사치스러운 묘사라니.


소설의 결말이야 어떻든 만약 나에게 단 하나의 열려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 외에 다른 모든 게 허락된다면 단 하나의 금지를 지키고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까. 

 그렇게 모든 것을 얻은 다음에는 만족하게 될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 생각 밖에 안 하게 된다고 한다. 그 방에만은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절대로 들어가고 싶어지는 걸까. 


 이 절대 지키라고 하는 말을 절대 어기고자 하는 뒤틀림과 사랑을 엮어서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억지로 사랑에 빠질 수도, 억지로 사랑하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말라'고 하면 '사랑하게 된다'는 논리가 떠오르고 마니까 말이다.


 책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즐겁게 읽고, 읽고 싶을 때 읽고, 읽고 싶은 걸 읽어 나가면 계속 읽게 되는 게 아닐까.


 마음이 어수선하니, 쓰는 일에도 드러난다. 어수선하고, 어지럽고, 어설프다.


엉뚱한 결론을 내려볼까.

이 이야기의 결론은 이런 게 아닐까.


"사랑은 사람을 시험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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