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 리뷰] 추락해도 좋으니 부디 나를 하늘로.

야간 비행_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by 가가책방


어린 왕자의 유명세에 비해 생텍쥐페리의 다른 작품들은 많이 묻혀있는 듯하다.
나 역시 <인간의 대지>, <우연한 여행자>말고는 읽은 기억이 없다(물론 어린 왕자는 몇 번이나 읽었고, 인간의 대지도 2번 넘게 읽었으나).


<야간 비행>과 <남방 우편기>가 한참 전부터 궁금했는데 이번에야 겨우, 아그레아블에서 진행한 '미래고전읽기'를 기회로 읽을 수 있었다.

<야간 비행>은 아직 비행기, 비행기술, 비행을 보조하는 기술들이 발달하기 전인 1940년 대를 배경으로 한다. 밝은 낮에도 위험한 비행을 야간에 한다면 얼마나 그 위험도가 올라갈까.

이 소설은 그 위험천만한 야간 비행을 행하는 비행사와 그들을 하늘로 이끄는 감독책임자의 이야기다.

책임자, 소장의 이름은 리비에르다. 그는 비행사, 정비사 들의 사소한 실수, 착오, 지연과 지체, 규칙에 벗어난 모든 일들에 눈 감아주는 법이 없다.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고 가장 외로운 자리에 올라 앉음으로써 비행사들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하고 규율을 지켜나간다.
그는 자신이 자비를 베풀기라도 하면 모든 게 무너지고 엉망이 될 거라 믿는다.
그건 사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구도 그걸 증명할 수는 없다. 그건 시험해볼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므로, 단 한 번의 실수, 실패가 누군가의 죽음이자 어떤 평화와 행복을 파괴하는 일이 될 것이기에.

파비앵은 갓 결혼한 젊은 비행사다. 하늘을 동경하고, 야간 비행에서 느끼는 고요함과 아늑함을 사랑한다. 그는 쉽사리 겁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무모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는 젊고,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머뭇거리기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날아오르는 편을 택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당시 비행기는 고작 8시간 정도를 비행하는 게 한계였다. 운이 나빴다고 해야할까? 파비앵은 마지막 비행에서 태풍을 만나 사방을 가로 막힌다. 남은 건 더 높이 날아올라 기회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일뿐. 파비앵은 날아 오르지만 다시 지상에 내려오지는 못한다.

리비에르와 파비앵은 <야간 비행>의 두 중심이다. 규율을 중시하며, 평생을 일에 바친 남자. 우정이나 관계에서 흔들림이 생길까 두려워 깊은 관계를 피하고 엄격한 규칙과 냉정한 판단을 내세운다. 좋게 생각하면 비행사들과 정비사들에게 스스로 더 높은 곳으로, 완벽한 일처리로 나아가게 밀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겠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죽음이 기다리는 사지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을 몰아세우는 폭군이나 다름 없다. 하늘을 꿈꿔본 적도 없이 시스템이 완벽하게 돌아가도록 관리하고 감독하는 존재. 그는 자신의 삶에서도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연이 되지 못한다.

파비앵의 세계는 파비앵이 태풍을 만나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등장한 아내를 통해 표현된다. 작고 소소한 행복 속에 살던 남자. 비행이라는 높고도 위험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지만 대지에 발을 디뎌, 사랑스러운 아내를 끌어 안았을 때 행복을 느끼는 지상의 존재. 하늘을 동경하고, 두려워 하며, 또한 사랑하는 남자가 파비앵이다.

읽으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향상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후배와 부하를 닦달하는 상관의 태도와 행동 방침은 정말 옳은가?
아니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율을 부여해야 하는가? 규칙은 필요하지만 이미 충분히 규칙을 잘 지키는 이들에게조차 더 강력한 규칙이 필요하다는 건가?

<야간 비행>을 생텍쥐페리의 마음은 하늘을 향한 동경이었을 거다.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여주는 인물을 만든 것도 그래서일 거다. 생택쥐페리 자신이 마지막 비행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어린 왕자가 그랬듯 세상을 떠나 버렸다. 시신조차, 그 무엇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이제는 야간 비행이 옛날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그러나 여전히 작은 실수들이 때로는 치명적인 것이 되어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비행은 여전히 공포와 두려움이자 해방이고 자유인 거다.

죽은 듯 보였던 어린 왕자는 그의 별로 잘 돌아갔을까? 태풍 속으로 사라진 파비행은 여전히 어떤 세계 너머에서 하늘을 날고 있지 않을까? 마지막까지 하늘을 날고자 했던 사람, 생텍쥐페리. 그의 다른 비행이야기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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