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약속_로맹 가리
로맹 가리의 작품에 궁금함을 넘어 작가 로맹 가리, 인간 로맹 가리를 알고 싶다면 읽어봐야할 책이다.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소설이라기보다 차라리 자서전 혹은 수기로 분류되어 마땅해 보였다.
로맹 가리는 열 권 넘게 읽었는데 단연 지지부진했다. 로맹 가리 답지 않은 문장이랄까.
번역 이슈도 있는 듯하고 무엇보다 편집이 깔끔하지 않았다. 오탈자는 물론 문장 곳곳에 오류가 있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바로 잡히지 않았다.
문학으로 이름 난, 하물며 '문학과지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 그래야 쓰겠나.
뭔가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나는 이제 완전한 프로 불편러에 등극했으므로 당분간은 계속 불편해 할 예정이다) 작가를 향한 애정으로 읽기를 마쳤다.
로맹 가리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어머니의 절대적인 기대(어머니 자신이 믿는 바, 로맹 가리의 미래 모습이 어머니가 상상하고 기대하는 그대로일 거라는 사실을 의심할 줄 모르는) 속에서 자라며 어머니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한 번의 실패나 좌절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간절함이 거의 전부다.
자신의 삶을 살았다기보다 어머니의 삶을 살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장교에 외교관에 어쩔 수 없는 난봉꾼에 매력남, 물러설 줄 모르는 남자. 모두 어머니가 상상하고 바라고 믿었던 아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로맹 가리는 그 모든 걸 이룬다.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가 바라던 일들의 일부를 실현 시킨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세상에 없었다.
아들이 망설임이나 멈추는 일 없이 미래로 나아가길 바라며 죽음을 숨겼던 거다. 인터뷰집에서 읽었던 사실의 좀 더 세밀한 정황과 전후를 알게 됐다.
아는 사람은 다 알듯 로맹 가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권총 자살이었다. 어머니의 이상적 아들인 로맹 가리는 절대 자살할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로맹 가리는 몇 번이나 자살 위험에, 죽음에 이끌렸던 모양이다. 절망의 끝에 다다를 때마다 함께 걷는 죽음을 깨달았던 모양이다.
프랑스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오직 로맹 가리를 읽고 싶다는 생각 하나 만으로도 그런 생각을 한다.
번역을 욕하고 싶어도 언어를 모르니 욕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나의 로맹 가리가 문장을 이따위로 썼을 리 없다는 생각에 확신을 갖고 싶을 뿐이라는 걸 알지만 욕심은 남는다.
로맹 가리의 작품을 읽어갈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로맹 가리가 좀 더 오래 살아남아서 몇 작품이라도 더 써주었다면 독자인 나는 그 몇 권만큼 더 행복해졌을텐데 하는.
없는 건 없는 거라 어쩔 수 없다. 남은 걸, 있는 걸 더 여러 번 읽고 다르게 만나볼 수밖에.
로맹 가리의 어머니의 마음을 알듯 하면서도 사실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느낀다. 그런 어머니를 지키려던 로맹 가리 역시 잘 알겠으면서 정말 모르겠다고 느낀다.
아직 덜 읽은 탓이겠지. 그래서라도 계속 읽어나가야겠다.